The Question about the Resurrection

(Text: Luke 20:27-38)

Rev. Dr. Nam Ok Yoo

 Korean Translation Below 

Have you been in a place with no way out?  Sometimes we hear the news that people are trapped in a broken elevator or a collapsed building. Air is losing oxygen and you have no voice left to call people.


Death is thought of as the last stop we arrive at in our life journey, and we all are to be there no matter who you are. It is an absolute reality anybody will eventually encounter. We simply cannot escape from it.


We fear death for several reasons. We fear death because we love life. We fear death because we are attached to our comforts of family, friends, power and wealth, and other worldly pleasures. We see death as something that would separate us from the objects to which we cling. We fear death because of our uncertainty about what follows it. Death is one of those we cannot control over, and a sense of being not able to control prompts fear.


Out of fear of death, the first emperor Qin Shi Huang in ancient China who constructed the Great Wall of China was desperate to live longer. He sent his advisor with 3,000 servants to the deepest corners of a mountain to get the mysterious herb medicine to conquer death, but in fact, they never returned, and the emperor died at the age of 50.


We all fear death. That’s why throughout human’s religious traditions worldwide, ‘afterlife’ has been a common belief from long ago.


The ancient Egyptians believed that humans would be restored after death to live forever. For Hindus, death is not the end; instead, humans will be transformed to another life. In Plato’s “Apology,” Socrates suggests that death is a kind of blessing that involves either a “dreamless sleep” or the transmigration of the soul to another place. In the Buddhist tradition, death means transitioning into a new life, being born into many forms of life depending on the past virtuous and non-virtuous actions. For them, an afterlife would be a continuation of themselves, and that their actions in this life, either good or bad, will bear fruit.


What about the Jewish people? There were two powerful religious groups in Jesus’ time in ancient Israel. One was the Pharisees, and another was the Sadducees. The Pharisees believed in the afterlife. They accepted Moses' law, the first five Hebrew Scriptures, Genesis, Exodus, Levites, Numbers and Deuteronomy, and literature and even the oral tradition from Moses, and this oral tradition was the basis for belief in the resurrection.


The Sadducees, on the other hand, did not believe in the afterlife. The Sadducees were the priests in the Temple, and they only accepted Moses' law, and because there is no clear reference to the resurrection in the book of Moses, they denied life after death. So, these two parties fiercely debated the subject.


Is ‘afterlife’ the same as ‘resurrection’ in our Christian faith? Not exactly. The Pharisees’ ‘immortality’ is based on the belief of human nature that denies death; whereas resurrection is based on our faith in God which says that even though we die, God gives life to the dead.


In today’s passages, some Sadducees come to Jesus. They are a group of modern intellectuals of that time. These Sadducees do not believe resurrection, but they think that there is a great contradiction between the levirate marriage, the law of that time, for a man to marry his dead brother's wife if she has no children, and the resurrection, Jesus’ teaching. So they set an intellectual trap for him, hoping that Jesus’ teaching about resurrection is false and absurd. 


So they come and ask Jesus, “There were seven brothers and the first took a wife and died childless. And the second, and the third took her, and in the same way all seven died with no children. And finally, the woman died too. If there is eternal life, upon the death of all the brothers and the woman, to whom will the woman be married?”


This imaginary scenario is meant to make fun of Jesus. However, Jesus takes them seriously, and he makes this a basic point: Resurrection is not a mere continuation of this life in this world. Life in this age is totally different from the age to come. In this world, humans all die eventually, so marriage is important to continue lineage; but in the age to come, there is no death, so there is no need to marry, and people are like angels, becoming children of God and will remain so forever.


That means death is the end of many things, but it is not the end of everything. Our death is not the end of God. Out of compassion, God puts them in God’s heart, and they will not ever be excluded from it. We humans are not eternal, but God’s love for us is eternal. Our life does not continue constantly, but God’s mercy is unending toward those to whom God is merciful. As they were, so they are now in God.


This means for Jesus that God is the God not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both then and now. Jesus' notion of resurrection means that Abraham, Isaac, and Jacob are not really dead, but alive, and so God is the God of the living. That means to God all of these ancestors are alive. That means that all the humans who lived before us and who are now not among us are living to God. Because of that connection with God, they are also not dead to us. They still speak today. We do not live without them. None of them passed away.


November 1st is All Saints’ Day, and November 2nd is All Souls’ Day in the Christian church tradition, and in Protestant churches like us, All Saints’ Day is less about the great historic figures of the church than about people we ourselves have known and revered. It is a time when all can reflect on and give thanks for deceased persons who have been influential in their spiritual formation and growth. So today, we remember those who have gone before us. We remember Leo and Marcelina, faithful servants of God in our faith community. On this day, a memorial gift in their honour is pledged by their son, Leomar, and daughter in law, Jovy, and we are once more reminded of their good influence upon our lives and this community.


And we are certain that God has not forgotten Leo and Marcelina. They are living with us as forebears of this faith community, Willingdon Heights UC. In God, they still live with us. They still speak today. We do not live without them. Amen.

​부활에 대한 질문

​유남옥 목사

​(누가복음 20장 27-38절)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때로 우리는 고장난 엘리베이터나 무너진 건물 안에 사람들이 갇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공기 중의 산소는 희박해 지고 나중에는 사람들을 향해 살려 달라고 외칠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죽음은 우리 삶의 여정에서 도달하게 되는 마지막 정거장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그곳에 당도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절대적인 현실입니다.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우선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가족, 친구, 권력과 부, 기타 세상적인 쾌락의 안락함에 집착하기 때문에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우리가 집착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어떤 것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우리는 죽음 뒤에 오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도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이며,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은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한 나머지 만리장성을 쌓은 고대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오래 오래 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자기 부하를 남녀 동복 3000명을 딸려 산속 깊은 곳으로 보내 죽음을 이기는 신비한 약초를 구해고자 했으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는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통틀어 '내세'는 오래전부터 공통된 믿음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이 죽은 후에 회복되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힌두교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대신, 인간은 다른 생명으로 변형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책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꿈 꾸지 않는 잠" 혹은 다른 곳으로의 영혼의 이동을 포함하는 일종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불교 전통에서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탈바꿈을 말하는데, 과거의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인 행위에 근거해서 새로운 삶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사후 세계는 현재 삶의 연속선 상에 있고, 이생에서의 그들의 행동은 좋든 나쁘든 열매를 맺는 다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어떻습니까? 고대 이스라엘 예수가 살던 시대에는 두 개의 강력한 종교 집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두개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내세를 믿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 - 히브리서의 처음 다섯 경전,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그리고 문학과 모세의 구전까지 받아들였는데 이 구전이 이들의 부활 신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반면, 사두개인들은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만 받아들였는데, 이 모세5경에는 부활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내세의 삶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집단은 이 주제를 놓고 매우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내세'는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부활' 사상과 의미가 같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불멸'은 죽음을 부정하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합니다. 반면, 부활 사상은 비록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근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몇몇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합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부활을 믿지는 않지만, 당시 법으로 정해진 형사취수와 예수가 말하는 부활 사상에는 큰 거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거짓이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런 희망을 품고 예수를 덫에 걸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이 꾸며낸 이야기는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한 각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진지하게 이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의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부활은 이생의 삶의 단순한 연속이 아니다는 것. 이생의 삶은 내세의 삶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 이생을 사는 인간은 모두 결국 죽기 때문에 혈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혼이 중요지만, 내세에는 죽음이 없으므로 결혼도 필요 없고 사람은 천사와 동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이 많은 것의 끝일 수 있지만,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에게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두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품 속에 영원히 품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죽었어도 하나님 품에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관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이 모든 조상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지금 우리 가운데에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는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들도 우리에게는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말을 합니다. 우리는 그들 없이 살지 않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죽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교회 전통상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고 11월 2일은 ‘모든 영혼의 날’입니다. 그런데, 연합교와 같은 개신교의 전통에서 ‘모든 성인의 날’은 교회의 위대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축일이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알고 있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의 영적 형성과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 고인들에 대해 생각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섬겼던 하나님의 충실한 종 레오와 마르셀리나를 기억합니다. 오늘 아들 리오마와 며느리 조비가 그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의미의 선물을 우리 공동체에 헌납키로 약속을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리오와 마르셀리나가 우리의 삶과 우리 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리오와 마르셀리나를 잊지 않으셨음을 확신합니다. 리오와 마르셀리나는 윌링던하이츠라는 신앙 공동체의 선조로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리오와 마르셀리나는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삽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리오와 마르셀리나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리오와 마르셀리나와 함께 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