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bundant

(Psalm 23)

I can imagine that you have heard hundreds of sermons preached around and about this most beloved psalm, Psalm 23! As a minister, I’ve never had a funeral service where the family failed to ask for this Psalm to be read at the funeral. As a matter of fact, at the most recent funeral that I had, this Psalm was shared.

 

오늘은 시편 23편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지금까지 시편 23편에 대해 수많은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목사인 제가 지금까지 거행한 장례식에서 이 시편 23편을 읽지 않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가장 최근의 장례식에서도 이 시편을 읽었습니다.

 

It was also the Bible passage I first memorized when I became a Christian. Songs have been written, stories told, and movies made to bring its beautiful, peaceful, and reassuring images to life for us who have probably never tended a flock of sheep. I haven’t seen a real sheep or personally know a shepherd. The ones I have seen were mostly cows, not sheep. Yet when we hear the first verse “God is my Shepherd” in the church, the images are always full of peace and free of fear.

 

시편 23편은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외웠던 성경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아마도 양떼를 돌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형편에 놓인 우리를 위해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많은 노래가 만들어졌고, 이야기가 전해졌으며,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실제로 양을 본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도 양치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 동물들은 대부분이 양이 아니라 소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낭송되어지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라는 첫 소절을 들을 때마다, 그 이미지는 언제나 평화로 가득 차 있고 두려움이 없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The central image of today’s scripture is shepherd. “God is my shepherd.” In this simple opening line, the Psalm is clear about the goal and focus, the centre and purpose of life. There is no rival loyalty, no competing claim. Only you Yahweh is my shepherd. This is a powerful proclamation. The Psalm expresses maximum confidence in God. 

 

오늘 본문의 중심 이미지는 양치기, 즉 목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니”하는 이 간단한 서두에서 시편은 삶의 목표와 초점, 삶의 중심과 삶의 목적에 대해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충성에 대한 경쟁도, 상충되는 주장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 여호와만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말 강력한 선언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최상의 확신을 표현합니다.

 

Different translations of this psalm have added to its beauty and meaning as if it needed help. I found a beautiful one by Eugene Peterson’s translation called “The Message,” which is, in his words, contemporary language.

 

이 시편의 다른 번역판을 보는 것도 의미와 아름다움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유진 피터슨의 번역판인 "메시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번역은 현대 언어로 쓰여졌습니다.

 

God, my shepherd, I don’t need a thing.

You have bedded me down in lush meadows.

You find me quiet pools to drink from.

True to your word You let me catch my breath

and send me in the right direction.

Even when the way goes through Death Valley

I’m not afraid when you walk by my side.

You revive my drooping head; my cup brims with blessing.

Your beauty and love chase after me every day of my life.

I’m back home in the house of God for the rest of my life.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눕히시고

쉴 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나를 쉬게 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렵지 않네

하나님은 나를 소생시키시니 내 잔은 축복으로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Walter Brueggemann in his book “The Message of the Psalms” begins his commentary on Psalm 23 with these words: It is almost pretentious to comment on this psalm. The grip it has on biblical spirituality is deep and genuine. It is such a simple statement that it can bear its own witness without comment. It is, of course, a psalm of confidence. It recounts in detail by means of rich metaphors a life lived in trustful receptivity of God’s gifts.

 

월터 부르그만은 자신의 책 "시편의 메시지"에서 시편 23편에 대한 주석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이 시편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거의 허세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 영성에 대한 이해는 깊고 진실하다. 그래서 어떤 논평 없이도 그 스스로가 증언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시구이다. 그리고 자신감의 시라고 하겠다. 풍부한 은유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삶을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사는 삶을 자세히 설명한다.

 

It is God’s companionship that transforms every situation. It does not mean that there are no deathly valleys, no enemies, but they are not capable of hurt… Psalm 23 knows that evil is present in the world, but it is not feared. Confidence in God is the source of a life of peace and joy.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힘입은 결과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의 골짜기가 없고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시편  23편은 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평화와 기쁨이 있는 삶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I deeply agree with Dr. Brueggemann’s comments, and I have discovered in my own life that God’s gifts are best understood and experienced when I fully trust God.

 

저는 브루그만 박사의 말에 동의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제 삶에서 발견했습니다.

 

There is something stunning in nature about mothers and children knowing one another’s voices. At primitive levels, mother bats find their babies in the midst of hundreds of thousands of different ones, by the sonar emitted. Research shows that blindfolded human mothers can identify their infants in group settings by the sound of the cry. It is awesome to think, extending such a principle exponentially, that the God of the universe knows us by our names and responds to our needs. There is something deeply moving about the notion that deeper within us is the longing to hear ourselves called and claimed by the voice of God.

 

엄마와 아이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아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무언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원시적인 수준에서 어미박쥐는 방출된 음파를 통해 수십만 개의 다른 새끼들 사이에서 자기의 새끼를 찾는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눈을 가린 어머니는 여러 아기들이 우는 환경 속에서도 본인만의 아기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원리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여 보면,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알고 우리의 필요에 일일이 응답하시는 일은 생각만 해도 경탄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를 부르시고 또 주장하시는 것을 듣고자 하는 갈망이 매우 깊다는 데에 감동이 있습니다.

 

St. Augustine said something similar when he wrote, “Oh God, you made us for yourself, and 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they rest in you.”

 

성 어거스틴도 다음과 같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의 가슴은 당신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안식하게 됩니다."

 

In the New Interpreters Bible comments on Psalm 23 with these words: “To be sure, it is appropriate that Psalm 23 be read and heard in the midst of death and dying. It may be more important, however, that this psalm be read and heard as a psalm about living, for it puts daily activities such as eating and drinking and seeking security in a radically God-centered perspective that challenges our usual way of thinking.”

 

The New Interpreters라는 주석서는 시편 23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시편 23편은 죽음의 한가운데서 읽고 듣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이 시편은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 방식에 도전하는 하나님 중심에서 먹고, 마시고, 안전을 찾는 것과 같은 일상 활동을 담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시편으로 읽고 듣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For me, Jesus is the Good Shepherd of my life--he sits me down, he has compassion on my hungry spirit, he leads me, feeds me, helps me to rest and be refreshed, and then he looks in my eyes and whispers, “Now take up your cross and follow me.” God, and God’s Son, Jesus, can always be trusted to be with us, to guide us, and to give us rest and peace.

 

저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은 제 삶에 있어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저를 앉히시고, 저의   갈망하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며, 저를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쉬고 재충전하게 하시며, 저의 눈을 보시고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이제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시므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The Psalm draws a stunning conclusion about God in this statement: “I shall not want.” There is nothing I shall lack because God is my shepherd. I shall not have any other yearnings or desires that fall outside the gifts of God because God makes us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because God leads us beside peaceful waters, and because God guides us in right pathways. 

 

시편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God shepherds by providing all that we need, which is not the same as all we may want. The good shepherd does not abandon us in times of suffering and danger. God stands with those who enter and dwell in such places. Even there, especially there, God leads as a companion whose presence may still our fears. God’s steadfast love is trustworthy. Always. God is the source of life abundant. In life, in death, and life beyond death, God is with us. We are not alone. Thanks be to God who keeps us, leads us, gives us, and loves us. Amen.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 -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닌 - 을 공급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우리가 고난과 위험에 처할 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곳에서도, 특별히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잠재우는  동반자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뢰를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풍요로운 삶의 근원이십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죽음 너머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