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inity as a Circle

(John 16:12-15)

Korean Translation Below

Today is Trinity Sunday. Starting today, we leave Easter Time and begin Ordinary Time, the liturgical season of Pentecost, a green growing time in our church life.


Unlike many other words, the word Trinity is not found in the New Testament. It is a concept that was developed and formed later in Christian tradition as one of the Christian doctrines. And yet, it was embedded deeply in Christian thinking from the start. Long before the church worked out technical Trinitarian terminology, New Testament writers tried to employ language that at least included three elements.


First, it is found in the baptismal formula at the end of Matthew: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Paul’s benediction at the end of 2 Corinthians also shows the trinitarian languages: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Spirit be with all of you.” Paul’s contrast of variety and oneness in 1 Corinthians also shows the trace: “Now there are varieties of gifts, but the same Spirit; and there are varieties of services, but the same Lord, and there are varieties of activities, but it is the same God who activates all of them in everyone.”


The church fathers wrestled with the issue of the interrelation among these three persons each of whom they believed to be God. And about 300 years after Jesus’ death, Christian leaders formalized the idea of the Trinity. They did that at the Council of Nicaea in 325 to defend Jesus and evangelize Christianity. This is what we call the Nicene Creed. Two hundred years later, Christian leaders in the fifth century wrote another creed, trying once again to clarify the Trinity for people to speak about who Jesus was. It is called the Apostle’s Creed. If you read it, you may realize that it is about defending who Jesus was since more than half of the words are related to Jesus.


The Trinity is considered as one of the most difficult concepts to understand because it is so mysterious. How can we best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reator God, Jesus the Word made flesh, and the Spirit who dwells in us and others? What is the logic of the character of God as three in one and one in three? How can we deepen our understanding of the doctrine to enrich all the relationships in our lives? St. Augustine once said, “If you can grasp it, it is not God.” Why is that? Because God is unknowable, unseeable, and indefinable.


The Trinity used to be explained visually as a triangle. But recently, many scholars see it as relational and as a circle. The word Perichoresis refers to the relationship of the three persons of the triune God. As you can see in the image from the slide – there is no beginning or ending, no top or bottom, God is existing and eternal relationship as Jesus says,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re is no hierarchy among the three and their relationship, and they are always moving, and there exists in-between space for them to freely move around. This is the relationship we are invited to join, so that we pray in God and not to God. Here we see God committed to the dance of an equal and unending relationship. We are invited to be in this relationship, part of dance, knowing the joy of love.


So, how can we live this in our daily lives? We are now moving into a new season. We are moving into the summer months, traveling and relaxing into the “ordinary time” of our liturgical calendar. So, this transitional time, today, Trinity Sunday, is about assuring and affirming that we are surrounded by the presence of the fullness of God’s love. Three presences of God - God the creator known in the history of Israel, the Word and Wisdom God known in Jesus, and the abiding Spirit are always with us not only today, but every day, wherever you go - acting out the fullness of God’s love. 


Today’s scripture passages tell the story of the fullness of God’s love in a moment of impending danger. In today’s gospel of John, Jesus provides reassurance and communion for his disciples. Let us imagine that we are there with Jesus, reclining around the table at the Last Supper. As we, disciples of Jesus, eat bread and drink wine, the room warm and the air fragrance of herbs, we feel deep within us a warning that danger approaches. Then we notice how solemn Jesus looks. Tonight, he makes no puns nor sings his favourite songs as he usually does. Tonight, Judas fidgets, stands up and stumbles out of the room.


And suddenly, Jesus brightens and begins speaking at length about companionship and discipleship. He tells us he is about to be crucified but assures us that we will not be alone. In John 16 verses 13, we hear Jesus say, “When the Spirit of truth comes, the Spirit will guide you into all the truth.” Although the life of Jesus will end soon, his work is to be continued by the Holy Spirit, the Truth-teller, the Advocate, with you and me.  


Today’s story tells us that God is with us in various presences. Jesus talks of his departure, and yet, he says his departure means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the Advocate, the Helper. So, there is an uninterrupted continuation of God’s presence. We are not abandoned as an orphan since God is with us on our journey of ministry.


And in our ministry together, we know how important our mutual care is as the three persons care each other in the image of Perichoresis. Mutual caring should exist not only between the minister and the members but between and among the members. Our on-going care for each other whenever and wherever is to experience the presence of God. This is the meaning of today’s scripture - that the work of the Spirit is described as “glorifying” Jesus, which makes visible the presence of God. In our ministry, we reveal God’s work in our time and place; that is what it means to glorify God.


Today’s scripture talks about the on-going presence of God even after Jesus himself has gone. God sends us the Holy Spirit, the Helper, to continue God’s ministry in our midst. God’s presence dwells in our community in various roles.


As we journey into the summer months, let us remember God who is with us always. God is in you and me and in this community. May we experience the fullness of God’s love. Amen.



Korean Translation


“둥근 원형의 삼위일체”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부활절기에서 오순절기인 Ordinary Time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많은 낱말과는 달리 삼위일체라는 낱말은 신약성경에는 없습니다. 그 낱말은 기독교 교리 중의 하나로 기독교 전통에서 나중에 발전되고 형성된 개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기독교 사상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던 낱말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가 삼위일체의 용어를 만들기 오래 전에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적어도 삼위일체의 주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언어를 구사하고자 했습니다.


우선, 그 예를 세례와 관련된 마태복음 후반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가 그것입니다. 다음으로, 고린도후서 마지막 부분에 있는 바울의 축도 또한 삼위일체적인 언어를 보여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가 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의 다양함과 일치라는 두 낱말의  대조 또한 그 흔적을 보여줍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으니라. 봉사는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시며, 활동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는 같은 하나님이시니라.”가 그것입니다.


기독교 교부들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각 위를 하나님이라고 믿는 이 삼위 사이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사후 약 300년 후인 4세기에 기독교 지도자들은 삼위일체 사상을 공식화했습니다. 그들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를 변호하고 기독교를 복음화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니케아 신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약 200년 후, 5세기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또 다른 신조를 작성하여 사람들이 예수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도록 삼위일체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그 절반 이상이 예수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신조가 예수님을 변호하려는 것이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너무나 신비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개념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우리 안과 다른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셋이 모여 하나가 되고 하나가 즉 셋이라는 하나님 본질의 논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삶의 모든 관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깊이 그 교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약 당신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정의내릴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려는 전통적인 방법은 삼각형 또는 선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이를 관계적으로 혹은 원형으로 보고자 합니다. 페리코리시스(Perichoresis)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의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슬라이드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는,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한 관계로 존재하십니다. 그들 세 위격의 관계 사이에는 위계가 없고, 항상 움직이며, 그 사이에는 서로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라고 그 관계에 초대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등하고 끝없는 관계의 춤을 추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는 사랑의 기쁨을 알고 춤추는 그 일부가 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처한 시간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계절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름이고 "ordinary time"이라는 전례력으로 이동하며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과도기인 오늘, 삼위일체 주일은 우리가 충만한 하나님 사랑의 임재로 둘러싸여 있음을 확인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알려진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 안에 있는 말씀과 지혜의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하심을 행하시는 내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어는 곳에 거하든지, 오늘 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본인의 임박한 위험의 순간에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그 식탁에 둘러앉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예수님 제자인 우리가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방은 따뜻하며 공기에서는 허브의 향기가 날 때, 우리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이윽고 우리는 예수님의 엄숙한 모습을 봅니다. 오늘 밤 예수님은 평소와 달리 농담도 하시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지 않습니다. 오늘 밤, 유다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다가 결국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옵니다.


최후의 만찬 중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빛을 발하시며, 동료애와 제자도에 대해 장황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에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올로 내버려두어 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이제 비록 예수님의 생애는 끝이 나겠지만, 그분의 사역은 여러분과 저와 함께 진리를 말하시는 분이시며 옹호자이신 성령에 의해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떠나가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지만, 예수님의 떠나심은 바로 진리의 성령, 옹호자, 조력자의 오심을 의미한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는 중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역과 선교의 여정에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아처럼 버려지지 않습니다.


마치 이 세 위격이 페리코리시스의 형상으로 서로를 돌보는 것처럼, 우리도 목회를 해 나가는 중에 서로 서로의 상호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상호 돌봄은 목사와 교인 사이 뿐만 아니라 교인들 사이에도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서로를 돌보는 배려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 본문의 의미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우리의 목회를 통해 우리의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신 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성령, 보혜사, 상담자, 변호자의 형태로 오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공동체에 임하십니다.


어느덧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계절에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 계절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 사랑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