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Mission in Life

Rev. Nam Ok Yoo

(Mark 6:1-13)

I used to attend a specific church decades ago. I remember the preacher at this church once said to the congregation: “Please, don’t tell our sons and daughters: 'I’ve known you since you were a little baby wearing diapers. You were a well-known little brat.'” It may sound odd to you, but it is not uncommon to hear this among Koreans, especially when people want to show that they know the person and their family very well. The preacher said this because he noticed such greetings made some young people feel uncomfortable.

 

오래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앞으로는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말씀을 삼가해 주십시오. “나는 네가 기저귀를 찼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어. 너는 꽤나 말썽꾸러기였지.” 여러분께 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인들 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종종 봅니다. 사람들 중에는, 어느 누구 개인이든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 목사님은 일부 젊은이들이 그런 인삿말을 듣고 무척 불편해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When children graduate from school, they tend to leave the church, only to return once they find a stable job or get married. They may have been unruly when they were young, but now, they’ve become a professional in their field. It is not difficult to imagine that they are reluctant to hear their old diaper stories mentioned on their fresh return to the church. And what is the result?  They are not likely to return.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단 교회를 떠나갔다가 후에 안정된 직업을 찾거나 결혼을 하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 사람은 어린 아이일 때는 개구장이였을지 몰라도 성인이 된 이제는 본인이 속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 왔을 때 누군가가 켸켸묵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면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필시 교회를 떠나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We tend to think that we know young adults very well, but we may not fully respect them or recognize who they are now. 

 

우리는 우리가 젊은이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젊은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도, 또 그 젊은이들의 현재 모습을 인식 못하는 지도 모릅니다.

 

I imagine that Jesus was in a similar situation at the synagogue in his hometown Nazareth. Before coming back, Jesus performed many miracles. He healed a demon-possessed man and healed many sick people. The people of Nazareth witnessed these acts. And on the day of Sabbath, Jesus delivered his first sermon on Isaiah, which is about good news to the poor.

 

오늘 마가복음 본문에서 보듯, 예수님은 그의 고향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셨던 것 같습니다. 고향 마을로 돌아 오기 전,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도 고치고 많은 병자들도 고치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일들을 다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좋은 소식에 관한 말씀을 합니다.

 

People heard it and they were amazed. They could hardly believe it, and the villagers started wondering: “Where did this man get these things, what wisdom was given to him, what powers come through his hands?” Yet upon hearing him, they remember that this man is just “the carpenter, Mary’s son.” Even if his father, Joseph, had died by this time, to identify Jesus as his mother’s son rather than his father’s may have been intended as an insult, by trying to imply that Jesus had no father. Moreover, his status as a carpenter did not command respect as a wise man and healer. The mention of his brothers and sisters tells us that this is a family the villagers know well enough to dismiss the possibility that Jesus had grown into a successful preacher. After all, a mere carpenter or a woodworker could not be expected to do great thing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 설교를 하신 분이 예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하며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은 바로 이 예수가 다름아닌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이미 세상을 뜬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동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분이 예수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즉 예수에게는 현재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에서였을 수 있습니다. 더욱, 목수라는 직업의 사회적인 지위로는  예수가 현명한 분일 것이라든지 사람을 치유하는 자라는 인식과 존경을 끌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특히나 예수의 형제자매에 대한 언급은 마을 사람들이 예수의 가족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반증으로, 그 사실은 예수님을 성공적인 설교자로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목수 출신은 위대한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Mistrust and unbelief indeed can grow from familiarity. I imagine Jesus must have been discouraged. And who wouldn’t be?  He grew up with these people. They had known him all of his life, but had no idea who he really was. It may be true if people know someone too well, it is hard to believe that the person is special.

 

이렇듯 의혹과 불신은 친숙함 속에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낙담이 컸을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안 그랬겠습니까? 다름아닌 이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은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의 평생 동안, 그들은 예수를 알고 지냈지만, 예수가 정말로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면, 그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기가 어렵게 되는 모양입니다.

 

While the villagers were astounded at his teaching and miracles, Jesus was amazed at their unbelief, as well as the general rejection by his own relatives and family. The people of Nazareth lost a great opportunity by refusing to recognize a familiar figure had become greatness in their midst. They failed to see Jesus as more than the carpenter son of Mary. They couldn’t perceive that something good could come out of their tiny little town. They had closed their minds and hearts. They refused to believe, and it affected his effectiveness to change their lives.

 

마을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과 이적에 놀랐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과 더불어 가족과 친척의 거부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있던 자기들과 친근한 인물이 위대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들과 마을이 변화되고 가르침을 받을 큰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 이상으로 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인구 200-400명의 조그만 작은 마을에서 좋고 귀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정신과 마음 문을 닫아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믿기를 거부했고, 따라서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Because of the cold reception he received, Jesus was unable to do much. Therefore, he sent out some of his disciples in pairs to continue his ministry in the region. The instructions Jesus gave them challenged them to trust in God’s provisions during their journey. Those instructions included bare minimum: to take a staff to aid with walking and chasing off wild animals; to wear sandals and one tunic, but not two; to reject fancy meals or comfortable beds in town.

 

고향 사람들의 냉대로 예수님은 정작 고향에서는 많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지역에서 사역을 계속하기 위한 방편으로 열 두 제자들을 짝을 지어 마을로 내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무척이나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했습니다. 여행을 위해 최소한의 것만을 지니도록 지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걷거나 야생 동물을 쫓을 목적으로서의 지팡이와, 신발 한 켤레와 한 벌의 옷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멋진 식사라든지 편안한 잠자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The disciples likely encountered people who were very hospitable, yet we can easily imagine that they too experienced hostility and rejection as a part of their journey. Jesus would have known this well from his own experience. Therefore, in those instances, Jesus instructed the disciples not to waste their efforts in these places, but rather, to shake the dust off their feet as they left. Jesus did not give up on his ministry because of the rejection he experienced: rather, he called the twelve and appointed them to preach, cast out demons, and cure the sick. Jesus encouraged the people to carry on their own ministry for God’s kin-dom. He commissioned his disciples to do God’s work wherever they were living and working.

 

제자들은 그들을 후하게 대접했던 사람들도 선교 여행중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한 대접보다는 적대감이나 거절을 더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한 경험으로부터 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경우, 한 장소에서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말고 바로 떠나라고 했고, 그 징표로 발에서 먼지를 털어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거부되었던 경험은 예수님으로 사역을 포기하도록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열두 제자를 불러 설교, 축귀, 치유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임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이 하나님 백성들이 더불어 사는 천국을 위한 사역을 수행하도록 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일하든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명하셨습니다.

 

As Jesus’ disciples, we are also sent by Jesus to the mission field which I believe is spread out along with our life-journey. When Jesus sent his disciples out, he taught them how to cast out demons. And I wonder what kind of ministry Jesus wants us to fulfill in our postmodern world?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도 인생 여정과 함께 하는 선교지로 파송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옛날, 제자들을 보내실 때는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현재 포스트 모던의 세계를 사는 우리가 사는 곳으로 오신다면 어떤 사역을 하라고 하실지  궁금합니다.

 

Yes, we live in a very different world than the world of Jesus’ disciples. In this diverse world, racially, culturally, and religiously, we try to be humble and inclusive. We may not want to say that our religion is best and many of us might be shy away from evangelizing people. We do not cast out demons and cannot perform miracles, but what we can do is to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gospel and invite people to join us. We can pray. We can encourage and heal people’s hearts by listening to their life stories. God works among us, as God was with Jesus and his disciples in their time. We too do not need fancy clothing or meals to live faithfully as his disciples.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의 미덕을 발휘해 잘 살아 나가야 하는 지금 우리는 될 수 있으면 겸손하고 포용적이 되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 전도하기를 주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이적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우리의 믿음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서 그들을 격려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에서도 역사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화려한 옷이나 멋진 식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God continues to work in and through our weaknesses and human limitations. We experience God in many mysterious ways. Our call is to continue to follow God’s lead and work towards a more loving and peaceful world. So, let us continue to take up Jesus’ message and ministry of justice, compassion and love knowing that God goes with us in times of pain and sorrow and joy. Thanks be to God for leading us and guiding us. Bless us and our ministry that we are doing here in our faith community.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와 약점 속에서도 계속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여러 신비스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소명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더욱 더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향해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기쁨의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의 메시지와 정의, 연민, 사랑의 사역을 계속 하도록 합시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신앙공동체에서 하고 있는 사역과 우리의 삶을 축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