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ons on the Residential School System

(원주민기숙학교에 대하여)

Rev. Nam Ok Yoo

(Matthew 22:34-40)

Today is the Indigenous Day of Prayer. It is the day for us as a faith community to learn about the Indigenous peoples, as we are working on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which will take a long time to bring about and to have a right and just relation with the Indigenous peoples in this land.

 

오늘은 ‘캐나다 원주민을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이날은 신앙공동체로서의 우리가 이 땅의 원주민들과의 관계에서 권리와 정당한 관계를 세우고 공평한 관계를 맺는 데 시간이 걸릴 ‘진리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면서 그들에 대해 배우는 날입니다.

 

There is much to discuss, but today I want to focus on Indigenous Residential Schools and the role of Canadian churches in perpetuating this legacy of injustice. A month ago, we learned of a deeply disturbing discovery that the remains of 215 residential school children were found at the site of a former Kamloops Residential School. We wanted to know: who was responsible for it, who are the victims, what are the lasting consequences, and more importantly, what can we, as a church in the United Church of Canada, do to right these wrongs? 

 

원주민과 관련해 논의할 것이 많지만, 저는 오늘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달 전, 우리는 캠룹스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 명의 학생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싶었습니다. 누가 그 책임을 졌는지, 누가 희생자인지, 지속되는 결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캐나다 연합 교회의 일원으로 이러한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을요.

 

Throughout the hundred-year history of the Residential School system, thousands of Indigenous children were torn from their homes and sent to schools intended to destroy Indigenous families, communities, and traditional ways of life. They experienced neglect, abuse, disease, loss of culture, language, parenting skills, and agony of being separated from their family and community.

 

100 년 이상 지속된 원주민 기숙학교 시스템의 역사를 보면, 수천 명의 원주민 아동들이 집에서 분리되어 원주민 가족, 지역 사회 및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파괴하기위한 기숙학교로 보내졌습니다. 그들은 방치, 학대, 질병, 문화 상실, 언어, 육아 기술, 가족 및 지역 사회에서 분리되는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Canadian churches are responsible for running the schools in partnership with the government. Canadian churches’ attempts to “educate” Indigenous children began at the early stage of European settlement in Canada. They considered schools the principal agent of religious conversion and cultural change.  As for our denomination, the United Church of Canada, one of its forerunners, the Methodist Church, opened day schools for Aboriginal children as early as the 1820’s. In 1847, the Department of Indian Affairs consulted with Egerton Ryerson, Methodist head of education in Upper Canada, about setting up Indian Industrial Schools. And he suggested a partnership between church and state. Since then, UCC was responsible for 13 residential schools.

 

캐나다의 교회는 정부와 협력하여 기숙학교를 운영한 책임이 있습니다. 캐나다 교회의 원주민 어린이 “교육”은 유럽인들이 캐나다에 정착한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원주민 어린이들을 기독교로 개종하고 원주민 문화의 변혁을 이루려는 목적의 주요 대행자로 여겼습니다. 캐나다연합교회는, 연합교회로 합해지기 전 교단인 감리교가 일찍이 1820 년대에 원주민 주간 학교를 열었습니다. 1847 년 원주민 업무부는 원주민산업학교 설립에 관해 Upper 캐나다의 감리교 교육 책임자 인 애거튼 라이어슨 (Egerton Ryerson)과 협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와 국가간의 파트너십을 제안했습니다. 그 이후로 연합교회는 13 개의 기숙 학교를 담당했습니다.

 

By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churches provided educational materials for many Indigenous children, preparing them for “Christian citizenship”. Canada did not become a country until 1867, so it was still a very young country. Politicians and church leaders wanted to build a new country like the ones they had left. In 1892, the government decided to support residential schools through a per capita grant for Indigenous students. The government fund supported 45 church–run residential schools across Canada in 1896. Church leaders supported the government’s policy of assimilation and civilization of Indigenous children until about the 1940s.

 

19 세기 말까지 교회는 많은 원주민 학생들에게 교육 자료를 제공하여 “기독교 시민권”을 준비시켰습니다. 캐나다는 1867 년이 되어서야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당시로 보면 신생의 나라였습니다. 정치인과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이 떠나온 나라와 같은 새로운 나라를 이땅에 건설하기를 원했습니다. 1892 년 정부는 원주민 학생들을 위한 1 인당 보조금을 통해 기숙학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부 기금은 1896 년 캐나다 전역에서 교회가 운영하는 45 개의 기숙 학교를 지원했습니다. 교회와 정부 간의 이러한 관계로 인해 교회 지도자들은 1940 년대까지 원주민 아동의 동화와 문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지원했습니다.

 

The government policy was designed to move communities, and eventually all Indigenous peoples, from their helpless ‘savage’ state to one of self-reliant ‘civilization.’ The goals of Christianity and good citizenship called for close collabor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The government provided buildings, equipment, and salaries for all forms of educational work, and the churches did the maintenance of missionaries to give religious education. This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church and state enabled the long-term contribution of the residential schools.

 

정부 정책은 공동체와 결국 모든 원주민을 무력한 '야만'상태에서 자립하는 '문명'상태로 이동시키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만들려는 목표와 훌륭한 시민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는 교회와 국가간의 밀접한 협력을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모든 형태의 교육 사업을 위해 건물, 장비 및 급여를 제공했으며 교회는 종교 교육을 위해 선교를 유지했습니다. 교회와 국가 사이의 이러한 긴밀한 관계는 기숙학교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게 했습니다.

 

As a result, the Indigenous peoples suffered deeply from the abuse and the loss of their culture. Stan McKay, the first Indigenous moderator of the UCC recalled this: “The impact of generations of aggressive attacks on our culture has destroyed much of our self-esteem. I spent five years in an Indian residential school, and I experienced the erosion of my positive identity as a Cree person.” He stated the residential schools caused ‘cultural genocide’; residential programs harmed Indigenous peoples mentally, physically, culturally, and spiritually.

 

그 결과, 원주민들은 심각한 문화 상실과 학대를 경험했습니다. 연합교회의 최초 원주민 총회장을 역임한 스탠 맥케이 (Stan McKay)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오랜 공격은 우리의 자존감을 상당 부분 파괴했습니다. 기숙학교에서 5 년을 보내는 동안, 저는 제 자신이 크리 (Cree) 부족의 일원으로서의 긍정적인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원주민 기숙학교가 '문화 학살'을 일으켰다고 말했습니다. 기숙학교 프로그램은 원주민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해를 입혔습니다.

 

In 1948 the United Nations declared “the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and Canada signed it the following year and adopted it by a unanimous vote in Parliament in 1952. According to Article 2 of the convention, genocide means any of the following acts committed with intent to destroy, in whole or in part, a national, ethnical, racial or religious group, as such: (1) Killing members of the group; (2) Causing serious bodily or mental harm to members of the group; (3) Deliberately inflicting on the group conditions of life calculated to bring about its physical destruction in whole or in part; (4) Imposing measures intended to prevent births within the group; (5) Forcibly transferring children of the group to another group.

 

1948 년 유엔은 “학살 범죄의 예방및 처벌에 관한 협약”을 선언했고, 캐나다는 이듬해에 이에 서명하고 1952 년 의회에서 그것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협약 제 2 조에 따르면 대량 학살은 국가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행해진 다음의 행위 중 하나로 규정이 됩니다 : 첫째, 집단 구성원의  살해; 둘째, 집단 구성원에게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행위; 셋째, 전체 또는 일부의 물리적 파괴를 위해 계산된, 집단생활 조건에 고의로 가하는 행위; 넷째, 집단 내 출산을 방지하기 위한 부과된 조치들; 다섯째, 집단의 자녀를 다른 집단으로 강제 전송하는 행위 등입니다.

 

The genocide affected not only the children, but their families. The residential school children had no chance to learn how to parent their future children. The anger of families who lost their children was often expressed in violence, abuse, drug use, and other acts of despair.

대량 학살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원주민 기숙학교 아이들은 자기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자녀를 잃은 가족의 분노는 종종 폭력, 학대, 마약 사용 및 기타 절망적인 행위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Now we wonder about the root cause of the residential school tragedy. I believe the essence of the cause stems from racial prejudices. At that time, the white Euro-Canadians believed that they were responsible for “civilizing and Christianizing” of the Indigenous peoples they encountered on the new continent which later called Canada. They believed that their ways were right. They thought they had been chosen by God to conquer to share their Christian beliefs. The idea of residential schools originated from their colonial attitudes of superiority and dominance.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숙학교 비극의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저는 그 원인의 본질은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시 백인들은 그들이 이 신대륙에서 만난 원주민을 “문명화시키고 기독교로 개종”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자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숙학교의 아이디어는 백인의 우월성과 지배에 대한 식민지적 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Around 1846, Rev. William Caw, the founder of Wesleyan Methodist Indian missions, invited Aboriginal people into their schools this way: “…The Government wish you to be religious, industrious and happy... we see no reason why the Red man should not be as comfortable, respectable and happy as the White man.” Caw described the Aboriginal ways of living as primitive, uncomfortable and unrespectable; and Aboriginal people as non-religious, lazy and unhappy.

 

1846 년경 웨슬리언 감리교 원주민선교 창시자인 월리엄 커 (William Caw) 목사는 원주민들을 학교에 다음과 같은 말로 초대를 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이 종교심이 있고 근면하며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백인만큼 편안하고, 존경받으며, 행복해지세요.” 커는 원주민의 생활방식을 원시적이고, 불편하며, 존경할 수 없으며, 원주민들은 비종교적이고 게으르고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When Europeans migrated to this country, they insisted on their ways of beliefs and values rather than considering those of the Indigenous peoples living in this land for thousands of years. The way Euro-Canadian missionaries imposed their way of life on the Indigenous peoples was through the residential schools. They wanted to educate the Indigenous children to the way of life and norms of Euro-Canadian standards because they believed the Indigenous peoples had an inferior culture. They judged the culture of Indigenous peoples as heathen. They believed Indigenous peoples’ customs and festive displays did more harm than good to Indigenous peoples; they criticized Indigenous culture as the worst element of its nature.

 

유럽인들이 이 땅으로 이주했을 때, 그들은 수천 년 동안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을 고려하기보다 그들의 신념과 가치관을 고집했습니다. 유럽 출신의 캐나다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에게 생활 방식을 강요한 방식은 기숙학교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원주민들이 열등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원주민 아동들에게 유럽 이 중심이 된 생활 방식과 규범을 교육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의 문화를 이교도로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의 풍습과 축제적인 전시가 원주민에게 유익보다는 해를 끼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 문화를 최악의 요소라고  비판했습니다.

 

Through reflecting on the legacy of residential schools, we understand the consequences of not respecting other cultures as our own, or not affirming and accepting cultural diversity.  Combating racism is not a passive effort -- it requires active commitment by churches in society. We cannot subordinate one culture to another. When we look around, we cannot deny that there still is racism in members and congregations in the Church. To overcome racial and cultural prejudices, the Church should be self-critical, self-monitored and self-evaluated. Being self-critical can be possible only in co-operation with those of different cultures, diverse experiences and perspectives. It is a necessary learning process that will happen only through an ongoing relationship with one another. Justice and reconciliation with Indigenous peoples is only possible if the Church transforms itself into an anti-racist church.

 

기숙학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다른 문화를 우리의 문화같이 존중하고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과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수동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교회의 적극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문화를 다른 문화에 종속시킬 수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면 교회 회원과 회중에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종적,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교회는 자기 비판적이고, 자기 점검을 해야 하며, 자기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자기 비판은 다른 문화, 다양한 경험 및 관점의 사람들과 협력해야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서로의 지속되는 관계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필수적인 학습 과정입니다. 원주민과의 정의와 화해는 교회가 반인종차별적인 교회로 거듭나야만 가능합니다.

 

We are all relatives to one another as God’s children; we are all related. This concept is called “All my relations,” which Indigenous peoples use frequently when they refer to someone or call someone. In today’s Gospel reading, Jesus tells the Pharisees as the second commandment, “You shall love your neighbour as yourself.” Here, Jesus doesn’t mean your neighbour as only a handful of people you know, belong to or you are close to. Rather, our neighbours go beyond superficial boundaries to communities different from us, and it can even include the whole creation like animals, rivers and mountains. If we still harbour racism and white supremacy, the role of our churches in the residential school system will haunt us forever. Our vision for an intercultural church is about combating this shameful legacy by creating a safe, welcoming space for all in our church and beyond. Let us make the vision come true here at the Willingdon Heights United Church and beyond. Amen.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친척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이 개념을 “내 모든 관계”라고 부르는데, 원주민들은 누군가를 언급하거나 누군가를 부를 때 자주 이 말을 사용합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 계명으로 바리새인들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여러분의 이웃은 여러분이 알고 있거나, 소속되어 있거나, 가까이하는 몇몇 소수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이웃은 피상적인 경계를 넘어 우리와는 다른 공동체로 나아가며 동물이나 강, 산과 같은 모든 창조물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원주민 기숙학교 시스템에서의 우리 교회의 역할은 우리를 영원히 괴롭힐 것입니다. 문화상호적교회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교회와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안전하고 환영하는 공간을 만들어 이 수치스러운 유산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윌링던하이츠 연합교회와 그 너머의 공간에서 이 비전이 실현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