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 Sunday after Epiphany 

Follow Me

Rev. Nam Ok Yoo

(Text: Jonah 3:1-5, 10; Mark 1:14-20)

“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fish of people.” This is what Jesus says when he calls his first four disciples. Two sets of brothers - Simon Peter and Andrew, and James and John – all are fishermen. When Jesus calls them, they immediately follow Jesus leaving everything behind.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서로 다른 두 형제들 –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모두 어부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모든 것을 뒤에 남긴 채 즉시 예수님을 따라나서게 됩니다.

 

Who are they? And what are the reasons that Jesus pick them as his disciples? Twelve disciples are the strange mixture of people. Matthew is a tax collector who is employed by Rome’s puppet ruler. Simon Peter denies his teacher, Jesus, three times. Judas betrays him with a few coins. Thomas does not believe Jesus’ resurrection when first told. No scholars like Nicodemus or wealthy patrons like Joseph of Arimathea are found in the twelve. Who can possibly notice any strong leadership abilities in any of them?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을 제자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마태는 로마의 꼭두각시 통치자에게 고용된 세리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의 스승인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가롯 유다는 동전 몇 개로 그를 배신합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학자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부유한 후원자는 열두 제자 중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 중에서 어느 누가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이겠습니까?

 

So why does Jesus pick and choose these ordinary people? The Gospel of Matthew writes that Jesus’ motives in choosing the Twelve is “that they might be with him and that he might send them out to preach.” It is said that Jesus never tried to hide his loneliness and his dependence on other people. He chose his disciples not as servants but as friends. He shared moments of joy and grief with them, and asked for them in times of need. They became his family, brothers and sisters. The Twelve disciples gave up everything for him, as he had given up everything for them. Jesus just loved them, plain and simple. Jesus does not seem to choose his followers by virtue of her or his own talents and excellences. His followers were ordinary people like you and me. They often misunderstood him. They failed to exercise much spiritual power. They sometimes behaved like children. These unpromising recruits were keep on failing and doubting, which tells they are exactly like us. They are none other than ordinary people like you and me.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을까요? 마태복음은 예수님 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신 동기가“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고 또 그들이 설교하게 내 보내시려고”라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외로움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성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제자들과 나누었고, 도움이 필요한 때면 그들에게 요청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그의 가족,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그가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듯,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재능이나 탁월함 때문에 제자들을 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여러분이나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그들의 스승을 오해했습니다. 영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데도 실패했고, 때때로 아이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믿음직하지 못한 풋내기들은 계속 실패했고 의구심에 차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우리와 같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여러분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In fact, the ordinariness of the disciples does give us hope. It gives us relief that even if we fail again and again, we still can hope to follow God like Jonah who is disobedient to God. We read Jonah this morning. Jonah is a very short prophet in Hebrew Scripture and he is a very unique figure. Even though Jonah tries to get out of the presence of God and flees to the opposite direction from Nineveh, the place God has told him to go, God is calling him again to his mission. Persistency is one of God’s characteristics.

사실 예수의 제자들의 평범성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요나처럼, 계속해서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기를 희망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요나서를 읽었습니다. 요나서는 구약 성경에 있는 소예언서이며, 요나는 매우 독특한 인물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벗어나려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고 하신 니느웨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그의 선교지로 부르십니다. 끈기는 하나님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What is more striking in this small book of prophecy is its theology that God’s power and mercy are not confined to the Israelites alone, but they are universal. God’s rule and grace extend to the Gentile Ninevites who do not understand Hebrews, Jonah’s language. The fact that God forgives and saves the Ninevites upon their repentance re-affirms the universal God that God is not only for the Israelites but for everyone. God is for all.

이 소선지서에서 발견되는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보편적인 것이라는 신학적인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는 요나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됩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 – 만유의 하나님이심을 재확인해줍니다. 하나님은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Emily Carr must have had the same theological perspective. In 1920-30s of Vancouver Island, she was disappointed and outraged by the way that Christian missionaries on the Northwest Coast were destroying the culture and religion of indigenous peoples. She sensed a spiritual presence in the cedar forests. She became interested in their primal, totemic religion and dedicated to creating a record of the vanishing villages and totem poles by her paintings.

에밀리 카도 이같은 신학적 관점을 지녔던 것 같습니다. 1920-30 년대 밴쿠버 섬에서 그녀는 북서 해안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곳 원주민의 문화와 종교를 파괴하는 방식에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녀는 삼나무 숲에서 영적 현현을 감지했습니다. 그녀는 원시적이고 토템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림을 그려 사라지는 마을과 토템폴에 대한 기록물을 만드는 데 전념했습니다.

 

The painting you see now is “Church at Yuquot Village” renamed in 2018 from “Indian Church” (1929). Carr locates the prime little missionary church in the center of the painting and cemetery appearing flimsy and temporary in their forest setting. We can see that the spiritual power seems to reside in the cedars that tower above the church and cemetery. We feel the rhythm and energy in her painting which strongly evokes her sense of the presence of God. About a year later after this painting she wrote this: “Go out there into the glory of the woods. See God in every particle of them expressing glory and strength and power, tenderness and protection. … Let the spoken words remain unspoken, but the secret internal yearnings, wonderings, seeking, findings – in them in the communion of the myriad voices of God shouting in one great voice, ‘I am one God. In all the universe there is no other but me. I fill all space. I am all time. I am heaven. I am earth. I am all in all.’” (her italic, November 12, 1930)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그림은2018 년에 “인디안 교회” (1929)에서 “유쿼트 마을의 교회”로 이름을 바꾼 그림입니다. 에밀리 카는 그림의 중앙에 선교사가 세운 작은 교회를 놓고, 숲을 배경으로 해서 어설프고 임시적으로 보이는 묘지를 배치했습니다. 교회와 묘지 위에 우뚝 솟은 삼나무에 영적인 힘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녀의 그림에서 신의 임재에 대한 감각을 강하게 불러 일으키는 리듬과 에너지를 느낍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약 1 년 후에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숲의 영광으로 나가십시오. 영광과 힘과 능력, 부드러움과 보호를 표현하는 숲의 모든 입자에서 하나님을 보십시오. … 말해진 말은 말해지지 않은 채 두고, 내면의 은밀한 갈망, 경이로움, 찾음과 발견은 무수한 하나님의 소리의 교제가 있는 중에 그 안에서 거대한 하나의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게 둡시다. '나는 하나의 하나님입니다. 온 우주에는 나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나는 모든 공간을

채웁니다. 나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나는 하늘이고 땅입니다. 나는 모든 것입니다. '” (1930 년 11 월 12 일)

Emily_Carr_Indian_Church.jpg

Emily Carr,

Indian Church, 1929

Oil on canvas, 108.6 x 68.9 cm

 

Art Gallery of Ontario, Toronto

Emily Carr finds that God’s spirit is not confined to church but is everywhere. For her, God is not only for the culture, tradition, and religion that settlers brought but for indigenous peoples’ culture, tradition and religion.

에밀리 카는 하나님의 영이 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정착민의 문화, 전통, 종교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원주민의 문화, 전통, 종교의 하나님입니다.

 

When Jesus called his disciples, he was not intending to form a new religion. Rather, he intended to reform Judaism by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the gospel, the imminence of the realm of God that is already here for everyone including the poor, the marginalized, and the foreigners.

예수 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의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복음의 기쁜 소식,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해 이미 이곳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급박함을 선포함으로써 유대교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From his first day of ministry in Mark, he breaks the rule and tradition of his day. He challenges it to include those marginalized and those suffering from social isolation, exclusion and condemnation by the society. In other words, his ministry is for life for everyone.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사역 첫날부터 그 시대의 규칙과 전통을 깨뜨립니다. 예수님은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배제되어 있고 사회적인 비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포함하도록 도전합니다. 즉, 예수님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살리려는 사역입니다.

 

In today’s text in Mark, Jesus proclaims the good news of Go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The Kingdom of God is a political term used against the Kingdom of Roman Empire and its Caesar but in fact, in its truthful sense, Jesus Movement is aspiring to the kin-dom of God, in which everyone is related to each other in a horizontal network of relationships rather than in a vertical, organizational chart. This term ‘kin-dom’ reflects the kind of society Jesus envisions as a shared community of equals who serve each other. We all have kin, our sisters, brothers and relatives and, furthermore, the ‘kin-dom’ extends to all as children of God beyond our ethnicity, religion, gender, and sexual orientation.

오늘 마가복음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로마 제국과 로마 황제에 대항하여 사용된 정치적 용어이지만, 사실 예수운동은 수직적 조직보다는 모든 사람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수평적 관계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킨덤’ (kin-dom)을 지향합니다. 이 '킨덤'이라는 용어는 예수님이 마음에 꿈꾼, 평등 공동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사회를 반영합니다. 우리 모두는 친척, 자매, 형제, 친척이 있으며, 더 나아가 이 '친족'은 민족, 종교, 성별, 성적 지향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확장됩니다.

 

When Jesus says to his disciples, “Follow me,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he means they need to learn to serve each other no matter who they are and where they come from, whether it is Galilee or Jerusalem or Nineveh. And he affirms that his nothing-special ordinary disciples can do this work. And so, in our ordinariness we find hope. Jesus knows we are weak and prone to fail just like his disciples, yet he affirms that we can do the same. I will put all my trust in this Jesus who understands us and encourages us, giving us life. Amen.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고 말씀하실 때, 그 말은 우리가 누구이든, 또 갈릴리나, 예루살렘, 혹은 니느웨, 그 어디에서 왔든,우리는 서로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제자들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평범함 속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제자들처럼 약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단언하십니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를 살리시는 예수님께 저의 모든 신뢰를 드립니다. 아멘.

© 2020 Willingdon Heights United Church. Proudly created with Wix.com

  • Facebook App Icon
  • Twitter App Icon
  • Google+ App 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