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ding in Jesus

Rev. Nam Ok Yoo

(John 15:1-8)

 

This morning I would like to start off with the Christian calendar.  The Christian liturgical season we are at now, after Easter Sunday is called Eastertide, Easter Time or Easter season. As you can see on the bottom of the slide, the liturgical colour is white. Easter season continues until the day of Pentecost comes, when the promise of Jesus fulfilled that God would send the Holy Spirit. The colour of Pentecost is red. After this day, the long season of Pentecost continues until Advent, before Christmas season. In our denomination we have the season of Creation Time for five weeks in September and October to focus on thanksgiving on God’s good creation, nature, and harvest.

 

오늘 아침 저는 그리스도력에 대한 이야기로 이 시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시즌은 그리스도교 전례력으로 부활절기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지금 슬라이드의 원 하단에서 보시듯, 부활절기의 색은 흰색입니다. 부활절기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된 오순절 전까지 계속됩니다. 오순절의 전례색은 빨간색입니다. 이날이 지나면 긴 오순절 시즌이 시작되고 이 시즌은 크리스마스 이전 대림절까지 계속됩니다. 우리 연합교 교단에서는 9 월과 10 월 5 주 동안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 자연, 그리고 추수 감사에 촛점을 맞추는 창조절기로 지킵니다.

 

Shall we recap to see what has happened so far? We have journeyed together with Jesus: we have seen his humble birth; his baptism by the Jordan river by the John the Baptizer; his transfiguration at the mountain top; his humble procession riding on a colt against the other Empire procession while people shouted “Hosanna!”; his suffering and death on the cross by the Roman Empire.

 

그럼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요약해 볼까요?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과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겸손하신 탄생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산 정상에서 모습이 변화하시는 것도 보았고,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는 동안 로마제국의 행렬에 대항하여 나귀를 타고 지나신 겸손한 행렬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 의해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죽음에 이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Then Easter came! The tomb was empty when Mary Magdalene and two other women arrived around daybreak. The stone at the entrance of the tomb was removed and the women learned that Jesus was alive and risen indeed. Then Jesus appeared to the fear-stricken disciples and showed them his hands and side. Now for 40 days he is travelling and preaching with his disciples, preparing them for his departure from Earth. After ten days of his ascension, the Day of Pentecost comes, and it will be marking the beginning of the Christian church's mission to the world.

그리고 부활절이 왔지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두 명의 여인이 새벽 무렵에 예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무덤 입구에 있던 돌이 제거되어 있었고, 여인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실제로 부활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예수님은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본인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여행하고 설교하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승천 이후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예수님 승천 후 10일이 지나 벌어진 오순절 사건은 세계를 향한 그리스도교 선교의 출발이 됩니다.

 

Last week, we read Psalm 23, the Divine Shepherd, written by King David, the greatest king of Israel in history. For him, God is the Lord, his shepherd who guides, feeds and protects him. Jesus proclaims in the Gospel of John, saying,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지난 주,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 왕이 쓴 시편 23 편을 읽었습니다. 다윗 왕에게 하나님은 그를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보호하시는 목자이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십니다.

 

And this morning we heard another powerful metaphor about Jesus, the True Vine. In Gospel stories, there are several images that Jesus self-identifies with - Bread, Light, Door, Shepherd, Life, Way, Truth, and Vine – which point to a deep theological meaning, and these images indicate certain relationships – relationship with God, with Jesus, and with each other.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또 다른 효과적인 비유를 들었습니다. 복음서에는 빵, 빛, 문, 목자, 생명, 길, 진리, 포도나무 등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칭하신 몇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이 이미지는 깊은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며, 특정한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 그리고 서로 서로에 대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We find comfort and peace in Shepherd God when Jesus likens himself as a vine.  “I am the true vine, you are the branches. Abide in me as I abide in you.” The “you” in these passages is plural, so it will be better if we understand it as our entire faith community, the church, rather than an individual. The author of the Gospel of John is writing this for his own community. Some members of the Johannine community encountered severe persecution, such as excommunication from the synagogue, due to their belief in Jesus, and the author of the gospel is concerned that the solidarity of the community members is weakening, after Jesus’ departure. The core theme here is an enduring relationship with Jesus on the part of each disciple and the joyous outcome of this relationship. A close bond with the living Jesus is the key concept which is expressed by “abiding” in Jesus, and it is the key term in this text.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실 때,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 안에서와 같은 위로와 평안을 찾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 구절에서 ‘너희’는 2인칭 단수가 아닌 복수형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 전체가 개인이 아닌 우리의 전체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대상으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당시 자신이 처해 있던 요한공동체를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요한공동체의 일부 구성원은 예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유대교 회당에서 파문이 되는 등 심각한 박해를 당했고, 그래서 이 저자는 예수님이 제자들로부터 떠난 후, 요한공동체 구성원의 연대가 약해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서 이 본문의 핵심 주제는 각 제자의 예수와의 지속적인 관계와, 이 관계의 결과로 나타날 기쁨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과의 긴밀한 유대는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표현되는 핵심 개념이며 이 본문에서의 핵심 용어입니다.

 

Vines, which are thick trailing plants that attach themselves to other things, will grow uncontrollably and result in one big, tangled mess. So, a vine-grower or vinedresser is needed to keep the vines in order. And so, here comes the paradox of pruning and removing: that the vine-grower must prune and trim some branches to make it bear more fruit. In the same way, this is what our community of faith needs: God tenderly prunes us to make us fruitful, productive, and thriving.  It is a tough work for the vine-grower, but ultimately worth it.

 

다른 것에 엉겨 붙어 자라나는 두터운 덩굴 식물인 포도나무는 통제할 수 없게 자라 하나의 엉겨 붙은 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포도나무를 풍성하면서도 엉겨 붙지 않게 잘 기르기 위해서는 포도나무 재배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지치기와 잘라내기라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포도나무는 가지를 쳐주기도 하고 다듬는 일을 해야만 더 많은 열매가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우리 신앙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요롭고, 생산적이며, 번성하게 하시기 위해 부드럽게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포도나무 가지나 포도나무 재배자에게는 가지를 쳐내는 일이 힘든 일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But did you know that the Greek word for prune, kathairo, has the same Greek root in Jesus’ foot washing and cleaning in John 13:1-10?  That means that the term prune doesn’t really mean a harsh cut-off or removal but rather it carries the meaning of cleansing, making pure, free from blemishes or shame, just like when Jesus is gently taking dust off from his disciples’ feet and cleans them. That is the way God cares for us, guides us, and grows us.

 

그런데, ‘가지치다’라는 그리스어인 kathairo가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10절에 나오는 제자들의 세족식에서 사용된 ‘씻다’라는 낱말과 동일한 어근을 지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다시 말하면, 그리스어 원래의 ‘가지치기’라는 말은 가혹한 자르기나 제거를 의미하기 보다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실 때 발의 먼지를 털어내고 부드럽고 깨끗하게 하실 때처럼,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며 흠이나 수치심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성장시키는 방식입니다.

So, I would say we don’t need to hear Jesus’ word, prune or remove, the word that has the same variation of prune, as a threat. Rather, his words are a promise.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you remain in me and I in you, then you will produce much fruit.” The vine carries water and nutrients up from the roots into the branches and the leaves. The branches then carry sugar down from the leaves, through the vine, into the roots. It is a mutual exchange of survival, nourishment, and fruit-bearing. That is how we abide in Jesus and Jesus in us, then we produce much fruit. As long as we are attached to the vine, we can grow fruits. And the vine never produces apples or cucumbers, but we bear grapes - the fruit of Jesus.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지치다’는 낱말이나 그와 같은 그리스어 어근 변형꼴인 ‘제거하다’라는 낱말을 우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에 대한 약속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너희는 많은 과실을 맺나니.” 포도나무는 물과 영양분을 뿌리로부터 가져와서 가지와 잎으로 운반합니다. 가지는 나무 덩굴을 통해 설탕을 잎에서 뿌리로 운반합니다. 그것은 생존과 영양, 그리고 열매를 맺기 위한 상호 교환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거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포도 덩굴에 붙어있는 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결코 사과나 오이 따위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포도라는 예수의 열매를 맺습니다.

 

Jesus is the true vine, and we are the branches. The power of love that flows from God into Christ flows also into our faith community that gathers around Christ. Through this connection to the vine of life, our faith community is filled with the loving energy of God, that same love that flowed through Christ. And because of this loving connection, we bear the fruit of joy – the fruit of Jesus. Thanks be to God for this loving connection for us. Amen.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그리스도로 흘러 들어간 사랑의 힘은 그리스도의 주위에 모여 드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로도 흘러옵니다. 생명 되신 포도나무와의 이 연합을 통해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통해 흘러 들어온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연합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를 위해 사랑의 연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