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on Time 4 - World Communion Sunday 

What Kind of Tenant Are You? 

Rev. Nam Ok Yoo

(Text: Matthew 21:33-46)

This morning’s gospel i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a landowner and his tenants.  

 

오늘 아침의 복음서는 땅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I have been both a tenant and a landowner in my life. When I was a tenant, I paid the rent on the first day of each month and when I was a landowner, I collected rent on the same date. I imagine that these two people have opposite emotions - landowners are looking forward to the day, I assume, while renters are probably not. It is one of the human characteristics that we dislike duty or responsibility. But paying the rent is part of our lives and no one can deny it. 

 

저는 살면서 세입자도 되어 보았고 집주인도 되어 보았습니다. 세입자였을 때는 매달 첫날 집세를 냈고, 집주인이었을 때는 같은 날 집세를 받았습니다. 아마 이 두 사람이 그날 느끼는 감정은 정확히 반대일 것입니다. 집주인은 그날을 고대하겠지만 세를 내는 세입자는 아마도 그렇지 않겠지요. 의무나 책임질 일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특성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세를 내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Now let us hear the parable of the wicked tenants again. 

 

그러면 악한 세입자 농부들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There was a landowner who planted a vineyard, leased it to tenants, and went abroad. When the harvest time came, the landowner sent his agents to the tenants to collect his produce. But the tenants used violence to the agents and even killed one of them. The landowner sent his agents again and the tenants did the same thing. Then the landowner sent his son this time, expecting that his tenants would treat his son with a little more respect, but instead, the tenants seized the son and killed him outside of the vineyard.

 

포도원을 만들어 세입 농부들에게 임대해 주고 해외로 나간 한 땅주인이 있었습니다. 수확기가 되어 이 땅주인은 그가 소유할 과일을 받기 위해 대리인을 세입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농부들은 대리인들에게 폭력을 사용했고,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땅주인은 다른 대리인들을 다시 보냈고 농부들은 이번에도 똑같이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땅주인은 이번에야말로 명예와 존경을 고대하면서 그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농부들은 그 아들도 붙잡아 포도원 밖에서 죽였습니다.

 

In order to understand this parable, we need to know the symbolic meanings of each word. Scholars say this parable is based on Isaiah Chapter 5, so we can understand the vineyard as the land of Israel or the kingdom of God; the landowner as God; the tenant’s farmers as Israel’s religious leaders, such as priests and Pharisees; the agents of the landowner as the prophets; and the landowner’s son representing none other than Jesus.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각 낱말이 함유하는 상징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비유는 이사야 5장 구절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땅 혹은 천국, 땅주인은 하나님, 세입자 농부들은 사제와 바리새인과 같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 땅주인의 대리인들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그리고 땅주인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Jesus confronts the powerful elites and religious leaders about their misbehaviour, killing the prophets and acting as if the vineyard (which represents the land of Israel) is theirs. But God is indeed the true owner of the land, and they have a duty to produce the fruit from the vineyard, which they fail to do. What are these fruits? The fruits of a righteousness, of goodness, kindness and mercy; a life of love and compassion. To love God with all your heart, mind, and soul and neighbour as yourself. 

 

예수께서는 부유하고 힘있는 엘리트들과 종교 지도자들과 대항하시고 계신데, 그것은  마치 그들이 이 포도밭, 즉 이스라엘 땅이 마치 자기들의 땅인 것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이는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땅의 진정한 주인이시므로, 그들은 소작인으로서 포도밭에서 열매를 소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서 그 열매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의로움, 선함, 친절함과 자비, 사랑과 연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과 마음, 영혼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But the religious elites were just like the wicked tenants of the parable. They were the ones who plotted to kill Jesus, the son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And although Jesus was the cornerstone that was rejected by the powerful and rich elites and leaders of the Jewish religion, he was the one sent by God and it was what God was doing. It looks we, humans, are trying to be away from God and to escape from God as long as we can as if we are the landowner.

 

그러나 엘리뜨 종교지도자들은 그 비유에 나온 사악한 세입자 농부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인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록 유대교의 강력하고 부유한 엘리트들과 지도자들에게서 배척되었지만 그는 모퉁이의 머릿돌로서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신 분이며,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마치 우리가 땅주인이라도 되는 양, 될 수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I have a story of a preacher. It goes like this: 

 

한 설교가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When his children were young, he caught his two preschool-age sons playing in his Jeep. They had been told not to play there, as it could be dangerous. However, his sons disobeyed him. The next time he caught them playing in the car, he crept by quietly and close so he could overhear their conversation without them noticing.  Bryan, his older son aged 5, said, “David, we’d better get out of here! Daddy told us not to get in here!”  To which the younger son, David, replied, “It is not Daddy’s Jeep, it’s my Jeep!” Hearing enough, the preacher stood up, and grinning, confronted David: “Oh, it’s yours now, is it?” Startled, David jumped in surprise, and tried to push him away, yelling, “Go away! You can’t come here!”   

 

그 설교가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는 취학전 나이의 두 아들이 그의 지프 차 안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차 안에서 놀면 위험하기 때문에 두 아들은 그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 아들은 아빠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음 번에 그 설교가는 차에서 놀고 있는 두 아들을 보았고, 조용히 차에 가까이 다가갔고, 두 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 살 난 큰 아들 브라이언이 동생 데이빗에게 말했습니다. “데이빗, 우리가 여기서 나가는 게 좋을거야! 아빠가 여기 들어 오지 말라고 했어!”  이에 데이빗이 말했습니다.  “이건 아빠게 아니야. 내 지프야!” 그때 그 설교가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 서서 세 살 난 아들 데이빗에게 말했습니다. “오, 이게 이제 네 거라고? 진짜 그래?” 그러자 데이빗은 놀라서 높이 뛰어 올라 아빠를 밀어 내며 소리쳤습니다.“저리 가세요. 아빤 여기 들어 올 수 없어요!”

 

After experiencing his son’s behaviour, the preacher reflected on the nature of humans and human history: “In that childish outburst, we have the character of humanity. History bears it out over and over again as God sends his “rent collectors” to the tenants to collect what is due, to remind us of who we are and who God is, and we treat them shamefully and send them away empty-handed. Isaiah, Jeremiah, Amos, John the Baptist, and the Son sent from God, who was Jesus, all were treated the same, shamefully and sent them away empty-handed. And it still has not stopped.”  

 

어린 아들의 행동을 경험한 후, 그 설교가는 우리 인간의 본성과 역사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작은 아들의 치기만만한 폭발 속에 인류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세 징수원들’을 세입자들에게 보내실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수치스럽게 대하고 빈손으로 돌려 보내는 같은 역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세례 요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모두 똑같이, 수치스럽게 취급되었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As he pointed out, it has happened over and over in history:  God creates the world like a fine vineyard and leases it out to humanity. God sends out his workers into the world to call all humanity to give God respect, to give him his due worship. And history has shown again and again the chronicles of our shameful treatment of those prophets sent by God.

그가 지적했듯이 그 일은 여전히 우리 역사에서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원같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에게 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꾼들을 세상에 보내어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을 존경하고 그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도록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그 선지자들을 부끄럽게 취급한 연대기의 연속입니다.

But we feel that sometimes our God is too patient and looks naive when dealing with these wicked tenants and sinners. Why did the landowner send his agents again and again despite their wickedness? Why did he give them second chances? And why did he send his most precious son? 

그러나 우리는 이 사악한 세입자들과 죄인들을 대할 때 하나님은 때때로 너무 인내심이 많고 순진하게 보인다고도 느낍니다. 세입자들이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왜 땅주인은 세 징수원들을 보내고 또 보냈을까요?  왜 그들에게 제 2의 기회를 주었을까요? 또 그의 가장 귀한 아들마저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We call this grace and mercy. A love for all humanity that God endures. We can’t truly understand how deep and everlasting God’s grace is. God’s grace is beyond our imagination and sometimes too gracious and merciful like this landowner of the parable.

우리는 이것을 은혜와 자비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오래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온 인류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영원한지 우리는 참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가끔은 오늘 비유에서의 땅주인처럼 무척이나 은혜롭고 자비롭습니다. 

 

We humans are sent according to God’s mission and will. God is the creator and God is at the centre of it all. It is not about you and me and us, rather it is about God.  God has a purpose for you and me and everybody else in the world.  You and I and everybody else in this world are tenants sent to this land to bear good fruit into this world, not rotten or sour fruit. Sin is not primarily about doing bad things, rather, it is an attitude of selfishness and pride that has no need for God. So God becomes a nuisance who gets in the way of our selfish desires, such that we would rather kill God’s Son and God's messengers.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선교와 뜻에 따라 이땅에 보내졌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가운데에 계십니다.  우리가 이곳에 보내진 것은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썪거나 신 열매가 아닌, 좋은 열매를 이 세상에 가져오기 위해 이 땅으로 보내진 세입자 농부들입니다. 죄는 일차적으로는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만심 있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을 방해하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리게 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메신저들을 죽이게 됩니다.

One of the smallest kingdom in the world is Liechtenstein. It is located between Austria and Switzerland, consisting of only 98 kilometers of distance. Yet there is a kingdom smaller than that. Do you know what it is? It is the vineyard planted in you by God. And I wonder what you are doing with it. Are you tending it with great care to produce good fruits such as love, compassion, generosity, and mercy to others and all our creation? When trees bear fruit, it is not for the sake of the tree itself, but for others, who receive nourishment from the fruit. Likewise, we must bear fruits for others. That is what God wants us to bear. What kind of tenant do you choose to be? A tenant with no need for God, or one who will bear fruits for the world? 

세계에서 가장 작은 왕국 중 하나는 리히텐슈타인입니다. 이 나라는 입헌군주국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거리가 61 마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작은 왕국이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심어 놓으신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과 모든 창조에 대한 사랑, 연민, 관대함, 자비와 같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계십니까?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 열매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 다른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입자가 되고자 하십니까? 하나님이 필요 없는 세입자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을 위해서 열매를 맺는 세입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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