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Saints Sunday 

Are you on the right track?

Rev. Nam Ok Yoo

(Text: Matthew 5:1-12)

Translation matters. Every week, when I transfer my sermon into Korean, I can feel myself struggling to form the right words. And vice versa. In fact, translating Korean into English seems even harder.  Language doesn’t exist alone in a vacuum; language is infused with cultural values, and without in-depth knowledge and understanding about the people’s culture and tradition in a particular country, you may end up translating one phrase into another with a completely different meaning.

번역은 중요합니다. 저는 매주 설교를 한글로 옮길 때마다 마땅한 낱말을 찾느라 끙끙거리게 됩니다. 한글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것은 더 어려운 일 같습니다. 언어는 진공상태에서 고립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문화적인 가치의 영향을 받고, 특정 국가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심층적인 지식과 이해 없이는, 한 구문을 완전히 다른 의미의 구문으로 번역하게 되고 말지 모릅니다.

Today’s text is the Beatitudes in the Gospel of Matthew. We call the Beatitudes the most beautiful and the most baffling teaching of Jesus. Beatitudes is a Latin word that means, “declared blessings,” and Jesus tells his disciples the eight blessings in his sermon on the Mount. So the text tells what are those blessed lives.

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의 팔복입니다. 우리는 팔복을 예수님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라고 부릅니다. Beatitudes는 ‘선포된 복’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여덟 개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 복받은 삶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Someone said they are beautiful as they paint a portrait of a life we crave, yet seemingly baffling in their unrealistic nature. It is hard to grasp the logic of it because these blessings are the opposite of what we see in our real world. In other words, those blessings are not the ones we normally consider a blessing. It shows Jesus’ peculiar upside-down perspectives, reversal worldview, so it will be critical how we translate the word ‘blessed’.  

어떤 이는 그 여덟 개의 복이 우리가 갈망하는 삶의 초상화를 그리듯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만, 그 복의 비현실적 특성이 우리를 당황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 복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보는 것과 반대이기 때문에 그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간주하는 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독특한 전복된 시점과 반전된 세계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복이 있다(blessed)’라는 낱말을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Someone says that the Greek word, makarios, is a fairly common word. It’s not hard to understand, but it’s difficult to translate into English. 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that we normally use translates it into ‘blessed,' which is by far the most common translation of the Beatitudes. It is said though that the problem with blessed is it sounds a little unreal. It seems it applies only to those saints whose names appear on the Bible and whose stories we celebrate on All Saints Day, and it seems it is unattainable to us.

누군가는 그리스어인 makarios가 꽤 흔하게 사용되는 낱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영어로 번역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로 보는 개역개정판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는 그것을 ‘복이 있는'으로 번역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팔복의 가장 일반적인 번역입니다. 하지만 이 ‘복이 있는’ 의 낱말은 어쩐지 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름이 올라와 있고 우리가 만성절에 이야기를 하는 성인, 성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고, 그래서 우리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The Greek word makarios is also translated as “greatly honoured.” This is a good option for translating because it emphasizes the theme of reversal which is implied in the Beatitudes. The meek and the merciful are not revered by the world’s standards, but they are honoured by God and by those who would live their lives with God’s ways. 

그리스어 makarios는 ‘매우 명예로운'으로도 번역됩니다. 이 낱말은 팔복에 내포된 반전의 주제를 강조하기 때문에 적절합니다. 온유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삶을 살려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Others have suggested that the word “happy” would be another option. Although it may sound superficial, it can mean a deeper happiness as we can see in Psalm 1 in the Hebrew Bible, in which the same word is used: “Happy are those who do not follow the advice of the wicked, or take the path that sinners tread, or sit in the seat of scoffers; but their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God’s law they meditate day and night.”  This happiness is not a  mere simple feeling that things are going well. Rather, these people are happy because they see the world in accordance with the way that God sees it.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다’라는 낱말을 제안합니다. 이 낱말은 깊이가 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같은 낱말이 사용된 다음의 구약의 시편 1편에서 볼 수 있듯이 차원이 깊은 행복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 행복은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단순한 느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Some suggest the word, “fortunate” as another translation alternative. It  skillfully summarizes the Beatitudes focusing on the element of irony like this: “How fortunate for the unfortunate, for God is on their side!  How fortunate for those who care for the unfortunate, for they are on God's side.”

어떤 사람들은 ‘운이 있는’이라는 낱말을 제안합니다. 그들은 아이러니의 요소에 초점을 맞춘 팔복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서 말합니다: “운이 없는 자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하나님이 그들 편이시니. 운이 없는 자들을 돌보는 이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그들은 하나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로다.”

Yet, some suggest ‘joyful’, some ‘congratulations’, some ‘satisfied’, and some ‘privileged' not because of their circumstances but because of a new way of seeing, a new way of naming, and a new way of being.  

 

또한 어떤 사람들은 ‘즐거운’, ‘축하의’, ‘만족하는’, 그리고 처해진 상황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이름짓기, 새로운 존재 방식 때문에 ‘특권을 누리는’ 이라는 낱말들도 제안합니다.

 

And yet there is another way to translate. In Hebrew, blessing is ashar, and it is translated as to find the right road or to be on the right track. It means someone finally finds a new life, kingdom life, the life that goes with God’s will and rule. The person finally finds God’s certainty of the promise of blessing. She knows God is present. The person knows the character of the kingdom and the citizenship within it. 

 

그러나 또 다른 번역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복을 ‘ashar’라고 하는데, 이는 ‘올바른 길을 찾은’ 혹은 ‘올바른 길에 선’으로 번역됩니다. 이는 마침내 새 삶, 하나님 나라의 삶, 하나님의 뜻과 법칙 대로 사는 삶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마침내 복에 대한 약속의 하나님의 확신을 발견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천국 백성의 특성을 알고 있습니다.

 

So if we allow ourselves to read the text again, we can say we are on the right track if we are mournful, poor in spirit and meek. Because God is on our side since our God is for the lower, persecuted, the marginalized, the poor, and the unfortunate. On the contrary, our God may not be present among the power, the privileged, and the wealthy even it looks like from the worldly point of view. God has a totally different plan. The unfortunate will be comforted, and they will inherit God’s kingdom and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그러므로 우리가 본문을 다시 읽는다면, 우리가 슬퍼하고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에 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미천한 자, 박해 받는 자, 소외된 자,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 편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 하나님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지는 몰라도, 권세있고 특권있고 부유한 자들 사이에는 계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불운한 자들은 위로 받고, 하나님 나라를 물려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입니다. 

God’s world is a total upside-down. Worldly prosperity and fame could be the total opposite before God’s eyes. And it can happen in our time as long as we have faith. Our suffering will be transformed as a blessing since God cares for us and God is present.

 

하나님의 나라에는 모든 것이 거꾸로입니다. 세상적인 번영과 명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 시대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은 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I’ve once read an article written by a Korean pastor. He used a “bullet taxi” as a metaphor for life, and I think it is well said. This speeding taxi in Korea runs around midnight, and despite the risk and danger, it is popular to those who are too drunk to drive. To maximize their profit, the driver wanders around asking people about their destination as he hopes to get as many passengers as possible if their destination is the same. However, once the driver makes his mind where to go, he no longer wanders around but goes straight down to the destination like a bullet.

 

어느 한국인 목사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인생을 '총알 택시’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말했는데, 잘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이 ‘총알 택시’는 자정 경에 운행이 되는데, 위험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택시 운전사는 목적지가 같으면 가능한 한 많은 승객을 모으고자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적지에 대해 물어 보며 어슬렁 어슬렁 돌아 다닙니다. 그러나 그 택시 운전사가 어디로 가야할 지 결정을 내리면 더 이상 이리 저리 방황하지 않고 총알처럼 목적지까지 곧장 내딪습니다.

 

Our life is similar to the taxi driver. Before we meet God, we wander around, not knowing the purpose of life. There seems hardly any peace in this worldly life and our minds are like restless waves on the sea surface. But the moment that you surrender to God, aimless wandering diminishes and peace from Jesus settles within us. Here, the sense of peace is the sense that I am on the right track. I feel God’s comfort and I have no want. 

 

우리의 삶도 이 택시 운전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삶의 목적을 모르고 방황합니다. 이 세상 삶에는 평화가 거의 없어 보이고, 우리의 마음은 수면 정처 없는 파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복종하는 순간이 오면, 목적 없는 방황은 줄어들고 예수님의 평화가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평화의 느낌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느끼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It was for me when I had a very difficult time. It was dark and terrifying, but there was something sweet in me. It was a moment of transformation by which I felt I was on the right track, overcoming all hardships and barriers in my way. 

 

저에게 그때는 제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였습니다. 어둡고 두려운 시간이었지만, 제 안에는 무언지 모를 달콤함이 있었습니다. 나의 길에 모든 고통과 장벽을 극복하고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느꼈던 변화의 순간이었습니다.

 

Are you feeling poor in spirit, and meek and mournful? God is with you and you are on the right track. Do you fear that the unrighteous, unjust and deceitful will prevail? Congratulations! You are aligned with God’s will, and it is a true blessing. Thanks be to God.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고 애통합니까? 여러분은 올바른 길에 서 있으며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불의하고 부당하며 속이는 자들이 만연함을 볼 때 불안하십니까?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며, 그것은 참된 복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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