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Sunday 

The Way to Peace

Rev. Nam Ok Yoo

(Text: James 3:13-4:3; 4:7-8a)

This Wednesday, November 11th is Remembrance Day and we observe today as Remembrance Sunday to remember those who have gone to war and gave their lives. Thousands of bodies were scattered in battle. We remember their courage and sacrifice.  We live in peace and freedom due to their sacrifice. The red poppy you wear today has the meaning of the blood sacrificed in war. It also symbolizes the blood of a sacrificed Christ in Christianity. Indeed, we live in peace and freedom due to someone else’s sacrifice. 

오는 수요일 11월 11일은 캐나다 현충일이며, 오늘 우리는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현충 주일로 지킵니다. 전쟁에서 수많은 시신이 희생되었고, 우리는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이 있기에 평화롭고 자유롭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슴에 꽃은 빨간 양귀비는 전쟁에서 희생된 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희생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사실이지, 우리는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인해 평화롭고 자유롭습니다.

May I share some stories about the Korean War?  After the two World Wars, Korea remains Canada’s third-bloodiest overseas conflict, taking the lives of 516 Canadians and wounding more than 1,200.  The Korean War began early Sunday morning of June 25, 1950 when the North Korean army fired and invaded South Korea.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많이 피를 흘린 해외 분쟁의 장소로, 516명의 캐나다인이 목숨을 잃고 1,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한국을 공격하고 침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The war lasted until an armistice was signed on July 27, 1953. As part of a UN force from 16 countries, nearly 27,000 Canadian military personnel served in the Korean War, during the combat phase and as peacekeepers afterwards.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6개국에서 온 유엔군의 일원으로 거의 27,000명의 캐나다 군인이 한국전쟁과 전투 단계에서 그리고 그 후 평화유지군으로 복무했습니다.  

I’d like to share with you my parents’ experience on the Korean War. My late father went to the war when he just turned twenty-one. At that time, there was no mandatory military service for men that they have now, but if someone was healthy enough to serve, they voluntarily joined the army to show their love for the country and its people. So my father decided to join the army. Haircut done. Went through multiple drills. Then he changed into a military uniform, taking off his school uniform.  

 

한국전쟁에 대한 저의 부모님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막 21살이 되었을 때 전쟁에 나가시게 됐습니다. 당시 한국 남성은 지금과 같은 의무적인 군복무는 없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군대에 갈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저의 선친께서도 군에 입대하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여러번의 군사훈련을 거친 다음, 입고 있던 교복을 군복으로 갈아 입게 되었습니다.

 

The winter weather in Alberta is severe as far as I know, but winter in Korea is harsh too, sometimes going down below minus 10 degrees.  It must have been a bitterly cold day on a fierce battleground. A bullet from the North Korean army went through my dad’s right arm just below the wrist. It must have been one of a shower of bullets. Showers of bullets! Immediately blood sprang and spread out all over. In this critical moment, how strong you should be mentally and physically? I wondered what he was thinking at that critical moment.  Was he thinking about his hometown and his mom and dad? Was he thinking about his close friends?

 

제가 아는 한 알버타의 겨울 날씨는 매우 혹독하지만, 한국의 겨울도 혹독하고, 때로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갑니다. 그날 격렬했던 전장터도 몹시 추운 날씨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북한군이 쏜 총알이 선친의 오른쪽 손목 바로 아랫팔을 통과했습니다. 그 총알은 소나기처럼 퍼붓는 무수한 총알들 중의 하나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총알들! 즉시 피가 튀어 사방에 퍼졌습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정신적으로 또한 육체적으로 얼마나 강해야 할까요? 그 위급한 순간에 제 선친은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그가 자라난 고향, 그곳에 계신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아니면 친한 친구들을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He was taken to a field hospital and they took the bullet from his arm. He was fortunate that his life was saved. But he must have been bitter when he saw his comrades were collapsing beside him. It was a blessing for our family that he was alive. If not, he wouldn’t have married and had four children. If not, there’s no way that I’d be here!  

 

제 선친은 야전병원으로 옮겨졌고 오른팔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선친의 경우 생명을 구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이 본인의 바로 옆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을 때 제 아버지는 몹시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아나신 것은 우리 가족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 아버지는 결혼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네 자녀도 낳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여기에 있을 수도 물론 없지요.

 

As soon as a cease-fire agreement was made in 1953, he got married through a matchmaker. At the wedding, my mom was able to peek at my father’s face for the first time. Then she saw the strange mark……the dark bullet wound in my father’s lower arm. It obviously was not well hidden under the wide sleeves of the Korean traditional costume that he was wearing at the wedding ceremony. So you see, wars not only affect men but also women. 

 

1953년 한반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자마자, 제 선친께서는 중매인을 통해 혼례를 치르시게 되셨습니다. 혼례에서 제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상한 상처 자국, 아버지의 아랫팔에 나 있는 검은 총알의 흔적을 보게 되셨습니다. 그 검은 흔적은 아버지께서 혼례 때 입었던 한복의 넓은 소매부리로는 잘 숨겨질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전쟁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For while my father had been spared on the battlefield, my mom also had a shocking moment in her hometown, which she never forgot. There were times when the North Korean Army got stronger and stronger. In those times, North Korean soldiers would come down to the villages, searching for men, young women, and food.  They were often hungry, so they would demand for food.  If they found men, they made them ‘prisoners of war’.  My mom was a teenager in her small farming village. When the village people heard that North Korean soldiers had attacked the village, my mom’s family hid her, the youngest daughter in the family, inside a big, empty jar in the back yard. They brought a lot of linens and filled the jar with layers and layers of linen towels. 

 

아버지께서 전장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 어머니도 고향에서 결코 잊지 못할 충격적인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때는 북한군이 더욱 강성해졌을 때였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남자, 젊은 여자, 음식을 찾아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자주 배가 고파 마을에 내려와 음식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 그들을 ‘전쟁포로’로 삼았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어느 조그만 농촌 마을에 사는 십대 소녀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북한군이 그 마을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어머니의 가족은 막내딸인 어머니를 뒷마당에 있던 큰 빈 항아리 안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무명천과 보자기를 가져와서 그것들을 켜켜이 쌓아 그 항아리를 빼곡 채웠습니다.

 

Hidden inside the jar, my mom was scared to death whenever someone approached the jar. But when a North Korean soldier actually opened the jar, he did not dig inside it. Maybe he simply could not imagine that there was a girl underneath! If she’d been caught that day, she could have been taken to ‘a people’s court’. It is pretty scary for me to imagine what could have happened to her. Unmarried young girls were most vulnerable, often abused and sometimes raped. 

 

항아리 안에 숨어 있던 제 어머니는 누군가가 항아리에 다가올 때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어느 북한 군인이 실제로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는 그 항아리 속을 파헤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군인은 그 속에 한 소녀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가 봅니다! 만일 어머니가 그날 그 북한군에 잡혔다면 어머니는 ‘인민재판’에 끌려 갔을 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상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미혼의 소녀들은 가장 취약했는데, 종종 학대를 당하고 때로는 강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My mom and dad were two of the lucky ones, but there are so many heart-breaking stories for those who remained separated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Millions of Korean families have been separated since the war. Both governments forbade their citizens to visit each other or even exchange letters, phone calls or emails. In October 2015, during the Separated Family Reunion Meeting held in North Korea, were dozens of families at last reunited and had given time to see and talk each other. 

 

저의 부모님은 운이 좋은 분들이었지만 남북한을 사이에 두고 헤어진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전쟁 이후 수백만 명의 한국 가정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양국 정부는 시민들이 서로를 방문하거나 편지나 전화 혹은 이메일을 교환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10월 북한에서 열린 이산가족 만남에서는 수십 명의 가족이 마침내 재회하고 서로 만나고 대화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An 83-year-old man living in North Korea met his 85-year-old wife living in South Korea! They had been separated for 65 years since the war. He was 17 and his wife was 19 when they married in 1949 but just seven months later, the war separated them. At the time, the wife was pregnant with their son. The son saw his father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In their conversation, the husband and wife said that it was indescribable how much they missed each other. The wife had not remarried but lived raising ‘their’ son alone. 

 

북한에 사는 83세인 남편이 남한에 사는 85세인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전쟁 이후 65년 동안 헤어져 살았습니다. 1949년 그들이 결혼했을 당시 남편은 17 세였고 그의 아내는 19세 였는데, 불과 7 개월 후 전쟁으로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 아내는 아들을 임신했던 상태였는데, 어머니 복중에 있던 이 아들은 자라서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형언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재혼하지 않고 ‘그들의' 아들을 혼자 키우며 살았었습니다. 

 

War has taken millions of soldiers and civilians, but it has never stopped throughout human history. It is always in present tense. The Scripture traces the human thirst for violence and killing to the incident when Cain killed his younger brother Abel.  In Genesis chapter four, we read that God was pleased with Abel’s offerings but not with Cain and his offerings. Cain immediately got angry. So God asked Cain, “Why are you angry, and why has your countenance fallen? If you do well, will you not be accepted? And if you do not do well, sin is lurking at the door; its desire is for you, but you must master it.”  Despite God’s warning, Cain killed Abel. Cain’s human desire and envy were much greater than God’s warning, and Cain dismissed God’s advice. 

 

셀 수 없이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살상되었지만, 전쟁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항상 현재 시제입니다. 성경은 폭력과 살인에 대한 인간의 갈증을 카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으로 추적해 들어갑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에는 기뻐하셨지만 카인과 그의 제물에는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에 카인은 즉시 분을 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카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분하여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카인의 인간적인 욕망과 시기심은 하나님의 경고보다 훨씬 컸고, 카인은 하나님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In today’s reading, the Book of James tells us that if we have bitter envy and selfish ambition in our hearts, it leads us to wickedness and disorder. Our desires can lead to murder. Cain’s desire and jealousy led him to kill his brother. James tells us that the root of conflict, disputes and even war is our greedy desire for things. Peace can only be possible when we are dwelling in God from whom all the spiritual gifts come along.  James goes on to say that the wisdom from heaven is pure, peace-loving, considerate, submissive, merciful, fruitful, impartial, and sincere. 

 

오늘 성서 본문인 야고보서는 우리 마음에 심한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사악함과 무질서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욕망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카인은 욕망과 질투로 인해 동생을 죽였습니다. 야고보서는 갈등, 분쟁, 심지어 전쟁의 근원은 사물에 대한 탐욕스러운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평화는 우리가 모든 영적 은사의 근원인 하나님 안에 거할 때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야고보서는 계속해서 하늘의 지혜는 순수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사려깊고 복종하며, 자비롭고 유익하고 공정하며 진실하다고 말합니다.

 

Today as we remember those who gave their lives for our freedom and peace, we honour their sacrificial love and dedication for our nation and people. The red colour poppy reminds us of the love of God who sent us God’s beloved son, Jesus Christ. Like his blood, shed on the cross, brings us eternal peace and freedom, the pure and peace-loving spirit of a fallen soldier will live in our heart forever as long as we don’t forget. Yes, lest we forget!  This is the way to peace which we want to pass on to our sons and daughters. This is the way to peace for generations to come.

 

오늘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며, 우리 국가와 국민을위한 그들의 희생적인 사랑과 헌신을 기립니다. 붉은 양귀비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켜 줍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처럼, 전장에서 스러진 군인의 순수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은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영원히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맞습니다,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전하고 싶은 평화의 길이며, 다가올 세대를 위한 평화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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