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 after Pentecost 

Take My yoke upon you 

Rev. Nam Ok Yoo

(Text: Matthew 11:16-19; 25-30)

 

This morning’s gospel reading is divided into three parts.  First, Jesus talks about his own generation. He says the people do not understand him. They, on one side, blame John the baptist. They say that John has a demon because he eats locusts, wears camel’s hair, and lives in the wilderness. On the other side, they also blame Jesus. They say that Jesus is a glutton and a drunkard because he is eating and having parties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오늘 아침에 읽은 복음서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예수님은 당대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세례 요한을 비난합니다. 그들은 요한이 메뚜기를 먹고 낙타의 털로 만든 옷을 입으며 광야에서 생활한다는 이유로 그가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또 예수님도 비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파티를 열기 때문에 그가 식충이이고 술고래라고 합니다. 

 

It seems the situation is not so much different from what we see now in our society. People often judge someone simply by looking at someone’s appearance without having much time together with the person. The people who criticize John the Baptist and Jesus do not really know who they are. People do not know what exactly John and Jesus are talking about and doing things and what the implications of their works are. People have their own excuses to avoid hearing John and Jesus; and, they keep on changing their tunes, not knowing what the messages they are bringing in. 

 

그런 상황이 현 사회하고 비교해 별반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다른 사람과 충분히 시간을 갖지 않은 채 다만 외모로 보여지는 면만을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른 채, 사람들은 그들을 비판합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며, 그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핑계를 대며 그들로부터 들으려 하지 않고,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을 바꾸기에 급급했습니다. 

 

Jesus calls these people “children” who do not know how to dance in a wedding or mourn in a funeral properly. They are lacking in seeing things in a deeper level beyond superficial level such as physical appearance, age, gender, power, and status so on.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어린이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은 혼인날 제대로 춤추지 못하고 장례때 제대로 곡을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외모, 나이, 성역할, 권력과 신분 등 얄팍한 층 너머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Instead of wisdom, they try to get knowledge in order to hide their vulnerability and to flee from fear. They spend their lives seeking knowledge to figure out God’s way. But the knowledge and intelligence made by them is totally ignored by Jesus. Jesus says God’s wisdom is hidden to “the wise and the intelligent,” who are the powerful Jewish religious leaders and priests. Jesus says God’s way is rather revealed to “infants”, the metaphorical word for the powerless, the poor, and the followers of Jesus.

 

추구해야 할 지혜 대신, 이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를 알아 내기 위해 지식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지식과 지성은 예수님에 의해 철저히 무시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는 당대 권력의 소유자인 유대교 지도자들 및 사제 부류인 “지적이고 현명한”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는 오히려 “아기들”에게 느러나 있는데 이 말은 힘 없고, 가난한 이들과,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Now Jesus further invites all the weary, who are tired of the heavy burden of obeying the law which could have gone to 365 prohibitions and 250 commandments and of the harshness of the “Holiness Code”.  Instead of having the yoke of the Moses’ Law, Jesus invites all to his yoke of grace. 

 

이제 예수님은 365조의 금지 규정과 250개의 계명에 달하는 끝없는 법과, “성결법”의 엄격함에 지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모세의 5경인 율법의 멍에가 아니고 예수님은 은혜의 멍에를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Slide 22) As you can imagine, the yoke is a symbol of burden bearing, oppression, and subjugation.

 

슬라이드 22에서 보시듯, 멍에란 우리가 지는 짐이나, 압제, 그리고 예속의 상징입니다.

 

(Slide 23) As you can see it from this picture, yokes are laid on the necks and shoulders of oxen and other kinds of animals and also on prisoners of war and slaves. 

 

슬라이드 23에서 보시는 것처럼 멍에는 소나 다른 짐승들, 또는 전쟁 포로나 노예들의 목과 어깨 위에 얹혀집니다.

 

This "yoke" was a common image for being obedient to the Mosaic Law. But "yoke" was also used metaphorically with positive connotations. Yoke is used as in the invitation to the wisdom literature in Sirach 51:26, "Put your neck under her yoke, and let your souls receive instruction," and Jesus is using the word in this context. Instead of Torah, we are encouraged to take up Jesus' yoke and "learn" from him. 

이 멍에는 보통 모세 5경에 복종한다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멍에는 좋은 의미를 가진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외경 중의 하나인시라크(Sirach) 51장 26절에는, “지혜의 멍에 아래 너의 목을 넣어 너의 영혼이 가르침을 받게 하라”라고 되어 있어 멍에는 지혜 문학을 권고하는 경우에 사용이 되었고, 예수님도 이런 맥락에서 이 낱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서 대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로부터 배우라고 하십니다.

(Slide 24) Jesus says,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We can say that following Jesus is easy because he frees us from the law, the constant demanding yoke in our lives. Our God whom we believe in is the god of life, not the other way around. Following Jesus is easy because he frees us from the weariness in our lives which is nothing to do with what truly matters in our lives.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해내기 힘든 멍에인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리는 하나님이니지 그 반대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쉽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율법이라는 삶의 고달픔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With his arms wide and open, Jesus invites us all, the weary and lonely souls, to learn from him. Jesus’ command to “learn from me” is related to the word for “discipleship”.  (Slide 25) The invitation to discipleship, however, is more than just cognitive learning; it is the adoption of a new way of life which Jesus calls us to do. Then he is promising that we will find rest for our souls. 

 

예수님은 두 팔을 크게 펼치시고 수고하고 외로운 영혼인 우리를 초대하시며 그로부터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나에게 와서 배우라”는 명령은 “제자”라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인지적인 학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라고 부르시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쉼을 얻을 수가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And with that invitation and promise we can hope we will overcome the fear and anxiety in the midst of the unprecedented pandemic, natural disaster, environmental catastrophe, war between nations, hatred,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and so on. But that doesn’t mean our lives are all easy and smooth if we live as Jesus’ disciples in this world. In fact, it might be the opposite. Following him might be risky and bring us a lot of challenges. 

그리고 예수님의 초대와 약속으로 우리는 이 전례가 없는 전염병과 자연재해, 환경재앙, 국가간의 전쟁, 혐오, 차별, 배제 등의 공포와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냥 쉽고 평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일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일 수 있고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A German theologian and pastor Dietrich Bonhoeffer was executed on April 9, 1945 by the Nazis because he tried to be a true disciple of Jesus. Bonhoeffer had to say no to what was against his Christian belief and truth. For him, it didn’t matter how fiercely a person believed in Jesus; how long, and how many times each day the person prayed; and how sincerely the person sang hymns on Sundays. In the end, the measure of how truthful we are, as a disciple, is not how we are in the church, but how we are in the whole of life. In the end, the measure of our discipleship is to live in the world as a man or woman who is for others, like Jesus who gave his life for us.  

 

독일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1945년 4월 9일에 나찌에 의해 사형이 되었습니다. 그가 진실한 예수의 제자이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믿음과 진리에 어긋나는 것에는 아니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얼마나 열렬히 예수를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얼마나 진정으로 찬양을 부르는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얼마나 오래, 그리고 몇번이나 기도생활을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얼마나 진심으로 주일 찬양을 하느냐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의 제자로서 우리가 얼마나 진실한가의 기준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제자도의 기준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삶을 주셨듯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남자 혹은 여자로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Rest is not offered to the strongest and the most powerful. 

Rest is offered to those who have been made weary by this world that fails to comprehend the burden of injustice. 

 

안식은 가장 힘이 세거나 강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안식은 불평등의 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상이 지치고 피곤한 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Jesus comes to us when we recognize him as a saviour, a life-giver. Jesus then comes to us with comfort, lifting our life burdens, wiping our tears away, and offering rest and peace. Amen.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살리는 자로 인식할 때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우리의 짐을 덜어 주시고, 우리의 눈물을 훔치시며, 우리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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