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after Pentecost 

Welcoming and Inviting 

Rev. Nam Ok Yoo

(Text: Matt 10:40-42)

 

Today’s Gospel reading, from Matthew 10, is the passage for the anonymous disciple, the one who does all the hard work, but is hardly ever recognized.  Here, the nameless disciple is not necessarily one of Jesus’ first 12 disciples, but one in the following generation after them and every one of us who is sent by Jesus to the mission field. 

 

오늘 읽은 성경 본문 마태복음 10장은 모든 힘든 일을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제자 이야기입니다. 이 이름 없는 제자는 굳이 예수님의 12제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12제자 이후 수대에 걸쳐 예수님에 의해 선교지로 파송된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들 각자가 바로 이 이름 없는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n today’s text, Jesus says, “Whoever welcomes you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welcomes the one who sent me. Whoever gives even a cup of cold water to one of these little ones in the name of a disciple, none of these will lose their reward.”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In just a few short sentences, we are challenged to think more deeply about what is meant by welcoming one another. The passage strongly suggests that it is only after doing so that we discover the reward that comes from the deep hospitality found in God’s welcome.

 

짧은 몇 문장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영접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 생각할 도전을 받게 됩니다. 이 문구는 우리가 영접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환대하실 때의 깊이가 있는 환영으로부터 오는 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말해줍니다. 

 

This passage also suggests that this act of welcoming others should be performed by us at any time. It does not have to be some grand gesture, but a simple, genuine and compassionate welcome to one another - as simple as a smile or offering a hand.  

 

이 구절은 또한 이런 타인을 환대하는 행위를 우리는 언제나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마치 더운 어느 여름 날의 찬물 한 컵과 같은, 무슨 대단한 행위가 아닌 -  웃음이나 남을 돕는 간단한 일과 같은 소박하고 마음 속으로부터 나오는 순수한 친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That is all that God asks of us.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전부입니다. 

 

Compassion is another name for God’s love. For Jesus, love is not sweet, sentimental, or passive. Rather it is active, dynamic, courageous, and loving means putting one’s love into productive and meaningful activity. Empowered by this kind of love, the community of early Christians would continue to survive. This kind of active, wholehearted love is the most eminent mark of Christians. 

 

연민은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듣기 좋거나 감상적이며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적극적이고 활발하며 용기있는 것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을 무엇인가 결실 있고 의미있는 활동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에 의해 능력을 받아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는 존속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적극적이고 충심으로부터의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탁월한 특징입니다. 

 

Wholehearted love does not discriminate or judge. In fact, many historians believe that this quality was central to the rise of Christianity. Christians were generous with their love with their families and neighbours. Christian communities became places where people tended to live longer and healthier lives, for when they suffered sickness, poverty or mishap they had sisters and brothers in Christ who provided for their needs. And Christians extended their love far beyond the boundaries of family and congregation to their other neighbours. But we should admit that loving one another is nowhere near as easy. Love in modern day is different – rather than unconditional, it is now so often an exchange. Love is now commonly given as a condition for future love in return.

 

충심을 다하는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특성이 기독교를 부흥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족과 이웃 사랑을 하기를 아낌 없이 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건강한 삶을 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아프거나 굶주리고 재난을 만났을 때 그들의 필요에 따라 공급을 했던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가족과 회중의 범위를 훨씬 넘어 다른 이웃에까지 그들의 사랑의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현대의 사랑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현대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기보다 거래입니다. 이제 사랑은 종종 답례로 돌아올 미래의 사랑을 위한 조건으로 주어집니다.

 

A missionary to East Africa learned during his activities that groups of Africans would walk past their government hospitals and travel many extra miles to receive medical treatment at the missionary compound. He finally asked a particular group why they walked the extra distance when the same treatments were available at the government clinics. Their reply was: "The medicines may be the same but the hands are different.”

 

동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던 한 선교사가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그 나라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지나쳐 여러 마일을 일부러 걸어서 선교지역에서 의료 진료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선교사는 마침내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왜 그들의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받아도 되는 진료를 일부러 몇 마일을 걸어서 같은 진료를 받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비록 약은 같을 지 모르지만 그들의 돌봄은 다릅니다.” 

 

Our love and compassion is not confined to someone that we know and care for; rather it is for all who come into our lives, in Christ’s name. When we welcome the stranger, we welcome none other than Christ. Jesus asks us to extend our tender love and compassion to someone who is different from us. “Welcome in the stranger. Welcome in the one whose life you hardly understand, not to change them but simply because they, too, are God’s.” 

 

우리의 사랑과 연민은 우리가 알고 돌보는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 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영접할 때 우리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절한 사랑과 연민을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확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낯선 자를 영접하십시오. 당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영접하십시오. 그들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들도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I want to share a story my friend once told me: 

 

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This story goes back to the 1960s. It’s about a young man named Bill who could be described as a hippie. He was in his early twenties, recently graduated from college.  He had long wild hair, wore a beard, dressed in blue jeans, and a tie dye t-shirt with holes in it.  He became a Christian while attending college.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60년대이고, 빌이라는 한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히피인 그는 장발인데다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청바지와 구멍이 뚫린 염색된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One Sunday, Bill decided to go to the church near his old college campus.  This was an old historic church, with a congregation made up of conservative folks, well-dressed, good civic-minded people who were pillars in the community.  Bill walked in with his long wild hair, his beard, blue jeans and a tie dye t-shirt with holes in it. The service had already started and Bill walked down the centre aisle looking for a seat. The church was completely packed and he couldn't find a seat. By then, the crowd was visibly uncomfortable, but no one said a word. Bill got closer and closer to the pulpit, and when he realized there were no more seats, he sat down right on the floor. By then, the crowd’s discomfort had transformed into disapproval, so much so that you could have cut the tension in the air with a knife.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빌은 그가 다녔던 대학교 캠퍼스 근처의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 교회는 오래되고 역사가 깊은 교회였습니다. 교인들은 이 공동체의 대들보로서 보수적이고, 옷을 잘 갖추어 입었으며,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길고 거친 장발에, 턱수염이 있고, 청바지에, 구멍이 있는 염색된 티셔츠를 입은 빌이 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예배는 이미 시작이 되었는데, 앉을 자리를 찾아 빌은 중앙 통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빌은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쯤 사람들은 내심 불편했지만,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빌은 강대상 앞으로 가깝게 다가왔고, 더이상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안 그는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 않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불쾌감은 비난으로 바뀌어져 예배당 안은 긴장감이 팽배해졌습니다. 

 

Then one of the deacons standing in back started to make his way down the aisle towards Bill. He was in his eighties, silver-grey hair and dressed very conservatively.  He was very dignified and well respected within the church.  So when he started walking down the aisle with his cane, it was assumed by everyone in the crowd that the deacon would reprimand Bill, or even ask him to leave. The old man was from an older generation than Bill. How could he possibly understand and relate to this strange young man? Sitting on the floor during church service?  No, that’s not going to happen.  

 

그때였습니다. 뒷편에 서 있던 집사 중 한명이 빌을 향해 통로를 따라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80대 노인으로 백발에 매우 보수적으로 옷을 입은 그는 교회 안에서 위엄있고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사가 지팡이를 들고 통로를 따라 걸어올 때 모든 사람들은 그가 빌을 질책하거나 그더러 나가달라고 부탁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노인은 빌과는 다른 구세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노인이 과연 이 유별난 젊은이하고 무슨 관련이 있겠으며 어떻게 이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예배 시간 동안 마룻바닥에 앉아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It took a long time for the old man to walk over to Bill. The church was utterly silent, except from the sounds of cane. All eyes were focused on him. Even the minister couldn't preach until the deacon did what he had to do. 

 

노인이 빌에게 다가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노인의 지팡이 소리만이 들릴 뿐 사방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모든 눈이 그 노인을 향했습니다. 목사도 그 노인이 무언가를 할 때까지 설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When he reached the spot where Bill was sitting, the elderly man dropped his cane on the floor. With great difficulty, the old man lowered himself and sat down next to Bill. He had decided to worship with Bill, so he wouldn't be sitting alone, among the disapproving and reproachful crowd. 

 

빌이 앉아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노인은 짚고 있던 지팡이를 마룻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는 몹시 힘겹게 본인의 몸을 낮추더니 빌 옆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빌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외롭게 앉아 예배 드리는 빌 옆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이 노인은 이미 결심을 했던 터였습니다. 

 

Everyone was stunned. When the minister finally recovered, he said, "What I'm about to preach - you will never remember. But what you have just seen - you will never forget.  Be careful how you live. You may be the only Bible some people will ever read.”

 

그 광경을 보고 예배당 안의 모든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목사는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설교를 여러분들은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방금 본 장면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사는 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은 몇몇 사람들이 읽을 유일한 성경이 될 지도 모릅니다. 

 

It may be awkward to embrace someone who seems so different from you. But God wants you to open your hearts, to embrace all others, and to offer compassionate hospitality. I do believe that God’s grace is not a potluck supper among ourselves; rather, it is the marriage supper to which all are invited. 

여러분은 여러분과 많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에 서투를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가슴 문을 열어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친절히 환영해 줄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끼리만 모이는 팟락 저녁 같은 모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초대되는 결혼 피로연같은 것입니다. 

 

We can draw the circle wide by letting go of our judgements and fear and awkwardness, by lowering ourselves onto the floor and worshipping next to Bill, to welcome all those who enter our lives. When strangers in our lives are welcomed, then and as Jesus says, our reward will be full. Amen. 

 

우리 삶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기 위해 우리의 판단과 공포심을 날려 보내고 우리 자신을 낮추어 마룻바닥에 앉아 빌 옆에서 같이 예배를 드림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주변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낯선 사람들이 환영받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듯 우리가 받을 상이 그득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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