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after Pentecost 

Feeding the Five Thousand 

Rev. Nam Ok Yoo

(Text: Matthew 14:13-21)

Every year, the United Nations releases a document called the Human Development Report, where it releases global rankings of HDI, also known as the Human Development Index. It indicates a country’s progress on various socioeconomic measures, such as Life expectancy, Education, Employment ratio, Inequality, human security, Gender Development Index, Internet users, and Carbon dioxide emissions, and so on. Canada ranked 8th in 2014, 10th in 2016, and 13th in 2020 among most countries in the world. 

 

유엔은 해마다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라는 문서를 발표하는데, 이 보고서에는 전세계 국가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순위도 들어 있습니다. 이 지수는 한 국가의 기대수명, 교육, 취업율, 불평등, 안전성, 성개발지수, 인터넷 사용자,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척도에 관한 진척을 나타냅니다. 캐나다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 중, 2014년에는 8위, 2016년에는 10위, 그리고 올해 2020년에는 13위를 차지했습니다.

 

So it tells us that Canada is in a far better place than most countries in the world. Our overall score is excellent as we are one of the top leading countries and we should feel proud of it. But that doesn’t mean our living condition nears perfection and there is no room for growth.

 

이로 미루어, 캐나다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캐나다는 선진국가들 중 한 국가로서 종합점수는 훌륭하고, 우리는 이를 자랑스러워야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생활환경이 완벽에 가깝고 성장할 여지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Regarding inequality, based on analysis by an international organization against poverty, a report shows that 1.2 billion people, about 17% of the world population, live with $1.25 or less a day. Also, about 85 richest people in the world have the same amount of wealth, as about a half of the world population, 3.5 billion people. It says that although absolute poverty has been reduced, inequality has accelerated. 

 

빈곤퇴치 국제기구의 분석을 근거로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말하자면, 세계 인구의 약 17%인 12억 명이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전세계 부호 약 85명의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인 35억 명이 가지고 있는 양의 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절대빈곤은 줄었지만 불평등은 가속화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What about British Columbia?  According to a report on “BC 2017 Poverty and Inequality”, despite having been one of the wealthiest provinces in the country, 13.2% of the population live in poverty. It says that the child poverty rate in BC is higher than the Canadian average, and the numbers of the children in poverty are more than the entire population of Abbotsford. Contrary to our assumption, most children living in poverty have parents who are employed. Most poor people in BC have jobs. Unfortunately, much of BC’s recent jobs are temporary, low-wage, or intermittent. 

 

우리가 살고 있는 BC의 경우는 어떨까요?  'BC 2017 빈곤과 불평등' 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 중 하나인 BC이지만, 인구의 13.2%가 빈곤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BC의 아동 빈곤율은 캐나다 평균보다 높고, 총 빈곤 아동 수가 아보츠포드 전체 인구보다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빈곤 아동의 부모는 직장이 있습니다. BC 지방에 사는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직업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BC의 최근 일자리의 대부분은 임시직, 저임금, 간헐적인 직업입니다.

 

Around 2000 years ago, when Jesus was in his ministry, he taught his students how to pray: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s we pray now.  Have you ever wondered about why Jesus put bread in his prayer? Isn’t it rather unspiritual to talk about food in your prayer in bringing forth God’s kingdom on earth?  

 

약 2000년 전 그의 공생애 간 중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지금 기도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이 그의 기도에 빵을 언급했는지 궁금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려는 기도를 하면서 음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오히려 영적이지 못한것이 아닙니까?

 

It is not difficult to guess. In the kingdom of heaven, our daily bread is not merely for the bread for our spirit, but the actual food for our physical body. Jesus recognizes that, while we may not live on bread alone, “without bread, we cannot live.” Jesus is compassionate not only for our craving for his word, touch, and comfort, but for our struggle against day-to-day hunger, poverty, and inequality in terms of food distribution in this world. 

 

그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빵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빵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를 위한 실제 음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으나, "빵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과 손길, 위안에 대한 우리의 갈망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식량 분배에 관한 한 매일의 굶주림과 가난, 불평등에 대한 우리의 투쟁에 대해 연민이 많으십니다.

 

Hunger, poverty, and inequality have been with us all along in human history. Especially the time when Jesus lived in, the first-century Roman Empire was marked by significant inequalities concerning food access. Many peasants lost their lands and survived as day-to-day labourers. The rich and powerful ruling elite exploited these people and their lands. They controlled resources and the lack of food was one of the ways many people experienced injustice. A great scholar on Jesus, John Dominic Crossan, theorizes that in this situation, the phrase “Kingdom of God” means economic justice for Jesus. According to him, the phrase “Kingdom of God” is not a question of a place; rather, it is a question of mode, style, and type of rule. It is a transcendental dispute between a beast-like rule from earth and a human-like rule from heaven.  So the petition for daily bread in Jesus’ Prayer talks about this situation. In the four Gospels, we see so many sick people. Why are there so many sick people?  It is because poverty and diseases occur hand in hand. They are closely related to each other. We see this fundamental formula in our time under the pandemic. While the ultra-rich escape quarantine for vacations, poor people have nowhere to go, and the homeless eventually die on the street without proper burial places.  

 

굶주림, 가난, 불평등은 인류 역사에서 줄곧 우리와 함께 해 왔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살던 1세기 로마제국은 식량접근에 관한한 심각한 불평등의 오점을 남겼다. 많은 농민들은 그들의 토지를 잃고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남았다. 부유하고 강력한 지배 엘리트들은 이 농민들과 그들의 땅을 착취했다. 그 지배 엘리트들은 자원을 통제했고 식량의 부족은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경험한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예수님을 연구한 위대한 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구절은 예수에게는 경제적인 정의를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크로산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라는 문구는 장소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유형이나 방식, 그리고 통치 형태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짐승 같은 통치 형태와 하늘 나라의 인간 같은 통치 형태 사이의 초월적 논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 속에 매일의 빵에 대한 청원은 이런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 복음서에서 우리는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을까요?  그것은 가난과 질병은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코비드 19이라는 유행병을 겪는 현 시대에 이 기본 공식을 봅니다. 억만장자들이 휴가를 떠남으로써 방역에서 탈출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고, 노숙자들은 결국 적절히 매장될 장소도 없이 길거리에서 죽게 됩니다.

 

When we pray,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it sounds like God may admit the inequality as the reality of our human life. However, we believe that God never approves and tolerates such inequality. 

 

우리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치 불평등을 우리 인간 삶의 현실로 인정하실지도 모르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불평등을 결코 인정하고 용납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Because the Prayer also tells God is indeed willing for us. God wills fair and just food distribution to all people in the world regardless of who they are.  So then, why is there so much hunger in the world? Why so much suffering? So little of daily bread?

 

왜냐하면 그 기도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말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식량 분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굶주림이 있을까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요? 왜 매일의 빵이 이렇게 적습니까??

 

How should we understand inequality in our lives? 

 

우리는 삶의 불평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I want to emphasize three things that we should pay attention to in the story of “Feeding the Five Thousand”. 

 

저는 오천명을 먹이신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세가지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First, we must pay attention to Jesus' "compassion". His compassion brings the story of curing the sick and feeding the five thousand men with twelve baskets of leftovers. After John the Baptist was killed, the disappointed people do not leave Jesus alone. They follow him everywhere, even to a quiet place of retreat. After seeing the crowd, Jesus aches with compassion for them. And this is not confined to his mere pitiful thought but is acted out through an action: then the mysterious miracle happens. 

 

첫째, 우리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오천 명의 남성을 먹이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세례요한의 죽음 이후 실망한 백성들은 예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든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심지어 예수님의 조용한 피정 장소까지 따라 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애처로운 생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실행이 됩니다: 그리고 신비스러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Secondly, sharing what we have brings forth a miracle of abundance. Our gifts and offerings may not be substantial, but when they are used by God’s hands according to God’s purposes, it will bring us a miracle, just like five loaves and two fish can feed five thousand men with twelve baskets leftover.  

 

둘째,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풍요의 기적을 불러옵니다. 우리의 선물과 헌금은비록 미미할 지 모르나,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쓰일 때, 다섯 덩어리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긴 것처럼,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Thirdly, we must do our own share – the same way Jesus asks disciples to give people the broken bread, rather than himself. God wants us to take part of God’s work. We should remind ourselves that Jesus alone does not feed five thousand directly. He instructs his followers to do so. God does not work alone, but through ordinary, humble people, like you and I. And when we need it most, God will give us the power to work for good for the world.

 

셋째, 예수님은 본인이 직접 주지 않고 제자들을 시켜 빵을 나눠 주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우리도 우리 몫의 일을 행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혼자서 직접 오천 명을 먹이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십니다.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여러분과 저처럼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위해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In the Kingdom of Heaven, there is compassion. In there, people share what they have, and there is more than enough for everyone. Jesus does not bring down bread from heaven like manna-miracle in the Old Testament, nor does he turn stones into bread as he was tested by the devil in the wilderness. He simply takes what is already there among the people and when it passes through his hands, miraculously, there is more than enough for everyone. This is not about conjuring food from thin air -  it means that when food passes through the hands of God-in-Jesus, there will be more than enough for all. 

 

천국에는 측은지심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각자 가진 것을 나누고, 모든 사람이 충분히 나누어 가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서의 만나 기적처럼 하늘에서 빵을 내리지도 않고,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받았을 때처럼 돌을 빵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는 다만 사람들 사이에 이미 있던 것을 가져오고, 그것이 그의 손을 통과할 때, 기적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중에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닙니다 -  그것은 음식이 예수 안의 하나님 손을 통과할 때,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The disciples initially suggest Jesus to send the hungry and poor crowd away. Similarly, we are tempted to ignore people’s heartbreaking stories and painful situations. But what do we get out of ignoring it?  Nothing. Nothing will happen if we don’t do anything. There would be no miracle of feeding the five thousand without us. But if we do something, distributing food fairly and generously with others and sharing what we have, a miracle will be happening. All will be fed with humble leftovers.  

 

제자들은 애초에 굶주리고 가난한 군중을 마을로 보내라고 예수님께 제안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고통스러운 상황을 무시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없으면 오천 명을 먹여 살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공평하고 너그럽게 식량을 분배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무언가를 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먹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The Kingdom of God is justice for Jesus. The Kingdom of God for Jesus is not a question of a place; it  is a question of mode, style, and type of rule. Which one do we prefer between a beast-like rule from earth or a human-like rule from heaven?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는 정의입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는 장소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유형이나 방식, 그리고 통치 형태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세상의 짐승 같은 통치 형태와 하늘 나라의 인간 같은 통치 형태 중 우리는 어느 것을 더 선호합니까?

 

What is the role of the church in this regard? 

이런 점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What can we do as a church? 

교회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What can you do as a Jesus follower?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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