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mise of the Holy Spirit

Rev. Nam Ok Yoo 

When my older daughter was little, I used to carry her piggyback from our home to the daycare. Every time when we reached the crosswalk somewhere in the middle of the way to the daycare, she would ask, “Mommy, which direction will you take me this morning?” To our right was a bus stop where we used to take a bus to go to my parents’ house – and to the left was her daycare where she had to spent her day without mommy while I was at work. She had some sort of separation anxiety and she often cried when I dropped her off at the daycare. Then I used to say to her, “Honey, mom is coming back soon, so don’t cry and be a good kid.” Then I kissed on her cheek as a symbol of love and promise that I would be coming back. As soon as she heard the assurance I would come back, she was able to say bye to me. And I always kept the promise! I came back!

 

제 큰 딸이 어렸을 때 그 아이를 등에 업고 놀이방에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가는 길 어느 지점에 두 갈래 길이 있는 교차로가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치려면 항상 제 딸은 저에게 묻곤 했습니다. “엄마, 오 늘은 어느 길로 가?”라고요. 우리 왼쪽에는 제 친정행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제 딸이 저와 헤어져 하루를 보내야 하는 놀이방이 있었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 딸은 아마 도 분리불안증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놀이방에 데려갈 때는 간혹 울곤 했지요. 그럴때면 저는 “엄마가 곧 올거야. 그러니 울지 말고 잘 지내라. 착하지.” 라고 하면서 그 애를 다독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징표로 딸의 뺨에 뽀뽀를 해 주었지요. 엄마의 약속의 말을 듣는 순간 제 딸은 엄마 안녕, 하면서 순순히 놀이방 안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약속을 지켰어요. 항상 돌아 와 주었으니까요! 

I assume fellow parents are familiar with separation anxiety – in which an individual experiences enormous anxiety at the thought of being separated from home, parents, caregivers, or siblings. It is most common in infants and small children, but interestingly enough, adults can experience this as well.

 

많은 부모들이 이 분리불안증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증세는 그 누구라도 집이 나 부모, 보모 혹은 형제자매들로부터 헤어질 때 혹은 분리될 때 겪는 극심한 불안증을 말합니다. 그 런데, 보통 유아나 어린이들에게 가장 흔한 증세인 이 불안증을 사실은 어른들도 경험한다고 합니다.

 

I imagine that the disciples had the same feeling when their teacher said he had to go in their farewell discourse. I can picture that they were anxious and fearful about their separation, the same way a child is fearful of losing their mother, becoming an orphan. And, in fact, they were like orphans without their teacher after he was killed. He was with them for about three years. They lived together, ate together, and journeyed together but their teacher was gone now.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의 마지막 고별사에서 본인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에 대해 말했을 때 그 제 자들의 심정이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어린이가 엄마와 헤어질 때 마치 엄마 를 잃고 고아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듯, 제자들도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 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에는 자기들의 스승을 잃은 채 고아와 같이 살았 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바로 3년 남짓한 세월 동안 같이 살고, 같이 음식을 먹고, 같이 동고동 락 했던 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스승이 지금은 그들 곁에 있지 않습니다.

 

When the writer of the Gospel of John wrote the departure scene in his gospel about one century after 70-80 years passed since Jesus had been killed, he would have thought about these disciples a lot, and he must have had in his mind about his own people in his community. The Johannine community lived a painful life under the Roman Empire. There was a constant threat to be kicked out of their own worshipping place, synagogues, in any time soon because they were a people of a sect in Jewish religion. That meant a disconnection from their town, the root of their lives, family and tradition. There was an enormous socio-economic and political pressure and the community much needed an assurance and promise as much it had been needed to the disciples of Jesus. In this situation, the writer of the Gospel pulled out all what Jesus had taught and told his disciples, and he was able to draw some of the words that were remembered from the vague memories: “I will not leave you orphaned; I am coming to you. In a little while, the world will no longer see me, but you will see me because I live, you also will live.” Here, what does Jesus mean when he said he is ‘coming back?’

 

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 사후 7-80년 정도가 지난 1세기경에 이 복음서의 그 장면을 쓸 때,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지금 현재 본인이 몸담고 있는 요한 공동체의 일원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 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 요한 공동체는 로마의 압제 밑에서 사회,경제, 정치적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 내고 있었습니다. 더우기 그들은 유대교 공동체 안의 한 분파였기 때문에 시나고그라고 하는 그들의 예배당에서 언제든지 쫒겨나갈 처지에도 또한 처해 있었습니다. 그 말은 그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터 전, 그들 가족과 전통의 근거지인 그들의 마을 공동체과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이중삼중의 고 통속에서 요한 공동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필요로 했던 것 만큼이나 예수님의 확신과 약속의 말씀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생전에 가르치고 말씀하신 모든 내용들 을 모았고,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서 오늘 본문과 같은 몇 말씀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 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 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내가 ‘오 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Of course this didn’t mean that Jesus would come back with his real, physical body as an old friend. What did it mean then? How could Jesus be coming back and be with them? For the writer of the Gospel of John it is the Spirit, a totally transformed entity. The Spirit is translated sometimes as the Advocate, someone who stands beside you in a court, sometimes as Helper, and sometimes Intercessor. The Spirit which blew like a wind from God swept over the face of the waters in Creation dwells in the one who loves God and us.

 

물론 이는 예수님이 마치 오랜 친구가 찾아오듯 실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다는 말씀은 아니었습 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요? 어떻게 에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 다는 것입니까? “내가 오리라”고 하신 것은 요한복음의 저자에게 있어 성령을 말하는 것인데, 완전히 탈바꿈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령은 보혜사, 즉 법정에서 당신의 곁에서 당 신을 도와 주는 존재로, 혹은 조력자 또는 중재자라고 번역이 됩니다. 천지창조 때 편만하던 수면 위 를 운행하던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와 우리들 안에도 머물게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 셨습니다.

 

Whenever I read this passage, I felt Jesus’ motherly love. It is like a mother’s love who promises that she would come back. Like the kiss that she leaves on the child’s cheek, Jesus promises the disciples and us to send the Holy Spirit. By this Spirit, the fearful disciples would endure the fear, go forth, and change the world. This is how the church began. Doubtful and frightened disciples became the courageous apostles who spread the word of Jesus. In the same way a child trusts their mother, the Pentecost can teach us that we need to trust God in Jesus in the midst of our doubt and challenges of our lives like today when Covid 19 pandemic is prevalent in the world.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는 예수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느낍니다. 아이에게 곧 돌아 오겠노라고 약속하는 어머니같은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뺨에 입맞춤을 남기듯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 과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이 성령으로 인해 불안에 떨던 제자들은 공포를 이겨 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고 세상을 바꾸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는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회의와 공 포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용감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 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강림절의 경험은 우리들에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심과 도전 속에서도 예수님 안의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줍니다. 이는 우리가 코로나 바 이러스로 전세계가 고통당하는 이 시기에도 그렇습니다.

 

I trust what Jesus said. It is his promise to us, as individuals or as a church community, if we love God and love one another, God will outpour God’s Spirit on all of us, men and women, sons and daughters, young and old, rich and poor, power and powerless, white and coloured, straight and non straight, giving us power and the gift, to do greater works in the world.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영을 우리 모 두에게 - 우리가 남자든, 여자든, 아들이든 딸이든, 젊든 늙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권력이 있든 없든, 백인이든 유색인이든, 동성애자든 아니든 - 보내신다는 것은 개인이나 교회 공동체로서의 우리를 향 한 약속, 우리가 예수님보다도 더 큰 일을 이 세상에서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I was called to journey with you. One thing I am pretty sure on this call is that it is not solely by our will but also by God’s vision and will to do God’s mission. Because I believe we are the body and Jesus is the head of our church and the force to drive and change its direction and make changes. I don’t know for sure yet what is ahead of us, but I have a vision of intercultural community in the Willingdon Heights United Church - a loving and dynamic community where people courageously come out of their comfort zone to take a risk to go into the meeting place, called the Third Place, a contact zone between different cultures. In that space, different cultures freely meet and interact without being reduced to a dominant culture. When people share their concerns together for a common good, each crosses boundaries to work with Others while being faithful to their own identities. It is an exciting journey of learning, acting and celebrating life together. Having this vision for our church, I am so excited to be called to the Willingdon Heights United Church and very excited to see how and where God is leading us to do God’s mission. However, that doesn’t mean it will be all rosy and smooth without any trouble; rather it sometimes will be challenging and curvy. That is how the Spirit works. But Jesus is very clear about this: he will be with us. Jesus will be with us and lead us to what he wants us to do. He will let us know more clearly about what his vision is and we will both walk together to do the work. In doing so, we need to recall Jesus’ assurance: “Do not be afraid. Because I live, you also will live. I will not leave you orphaned; I am coming to you.” God is present among us and walks with us in our faith journey together.

 

저는 여러분들과 믿음의 여정을 함께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부름이 저나 여러분의 의지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하나님 자신의 비전과 의지가 함께 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몸이요, 교회의 방향과 변화를 주도하시는 교회의 머리요 힘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저는 윌링던 하이츠 연합교회에서 문화상호적 공동체로서의 비전을 봅니다. 이 우호적이고 역동적인 공동체에서 는 서로 다른 문화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각자의 익숙한 곳에서부터 벗어나 제 3의 장소인 만남의 장소로 가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그 제 3의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가 어느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로 동화됨이 없이 자유롭게 만나고 교류합니다. 공동의 선을 향해 우리가 서로 관심사 를 나눌 때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타자와 같이하기 위해 서로의 울타리를 넘나 들게 됩니다. 이런 문화상호적 목회는 함께 하는 삶을 배우고 실천하고 축하하는 여정입니다. 윌링던 하이츠 교회에 대해 이런 목회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저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우리를 어 떻게 그리고 어디로 이끄실 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 말은 그러나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본다거나 우리 가 걷는 길이 어떤 문제도 없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길은 가끔은 도전을 주 기도 하고 구불구불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바로 그렇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 리와 함께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에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대 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가진 비전을 분명히 우리에게 보일 것이며, 우리는 그 일 을 함께 해 나갈 것입니다. 그 일을 함께 해 나갈 때, 우리는 예수님이 남기신 다음과 확언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으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동행하십니다.

 

We are not alone. God is with us. Thanks be to God.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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